매일신문

1996년 역사부터 바로세우라

아홉명의 사람들이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진뒤 다섯명은 이것은 분명 코끼리요 라고 말하고 나 머지 네사람은 아니오 이건 코뿔소요 라고 했을때 여섯사람이 코끼리라고 말했다면 코끼리가 되지만 네사람이 코뿔소라고 했으니까 코뿔소다 라고 우겼을때 과연 진실은 코끼리인가 코뿔소일 까?

얼마전 사람들은 이 기묘한 퀴즈쇼 같은 헌재(憲裁)의 논리에 한참동안 갸우뚱해진 고개를 바 로세우기 가 힘들었다

역사바로세우기 의 주체세력은 불과 30% 남짓 밖에 안되는 표를 얻고도 다수결 원칙의 논리에 의해 집권을 했으면서 막상 역사 바로 세우기의 결정적인 법적 토대는 거꾸로된 다수결원칙에 의 해 유지시킨 상황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비리와 부정을 처벌하는것은 민주법치국가의 당연한 정의며 현존하는 범법사실을 알고도 역사에 묻어두자는 현실도피적 정치 역시 올바른 역사를 만 들어가야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따라서 5.18이나 12.12의 구부러진 부분을 바로 펴는일은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역사란 항상 곧게 펴진 사실(史實)뿐아니라 구부러지고 거꾸로서고 찢 어지고 찌그러진 모든 사실들이 모여서 이어진 총체적 과정의 덩어리다. 어차피 인간들이 모여 역사를 만들고 오감(五感)의 정서를 지닌 사람들이 빚어낸 갖가지 삶의 족 적이 모인것인만큼 역사의 모든 부분이 다 대나무처럼 곧게 서 있을수만은 없다. 조선왕조만 해도 개국역사의 시작부터 만수산 칡넝쿨처럼 엉켜본들 어떻겠느냐는 정서에서 출발 됐다.

그 어떤 역사도 굽어진 부분이 있다면 오늘의 교훈적 거울로 삼았으면 삼았지 일일이 바로 세우 겠다고 무리하게 나서서 또다른 굽어진 역사를 새로 더 만들어내는 것은 어리석은 게임이 된다. 다음 시대의 경종을 위해 지난 시대의 부정을 씻어내자는것과 역사 바로세우기는 떼어놓고 써야 할 구호다.

어제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때문에 오늘의 역사가 구부러지거나 삐딱해지고 다시 내일은 오늘 빚어낸 삐딱한 역사를 세우느라 세월을 보내면서 또 새로운 삐딱한 역사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의 역사는 밤낮 묵은 역사 세우기로 날이 새게 된다.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의미는 오늘 하루하루의 작은 역사의 조각들을 바로 세운채로 쌓아나 가는데 있다.

최근의 집권층 모습을 보면 역사바로세우기란 구호가 너무 남발되면서 설득효과가 떨어지는 느 낌이 있다.

며칠전엔 내무장관까지 지역순시를 나와 역사바로세우기에 공무원이 동참하라고 독려하며 다니고 있다.

공무원들로 치자면 이미 신한국창조 에서부터 세계화 구호가 나왔을때까지 열심히 하루하루 나 름대로 맡은 직무를 통해 역사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

공무원 뿐아니라 온국민이 죽으라고 열심히 신한국의 꿈을 안고 세계화된 삶을 살아보려고 땀흘 리고 있다.

4천만이 하루하루 처자식 생존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그것들이 한데 모여서 1996년 오늘의 역사를 만들고 세워가고 있는 것이지 특별히 바로선 역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바로 살고 세상이 바로 돌아가면 바로 선 역사가 돼서 저절로 역사가 바로 서게되고 다섯 명이 코끼리라고 해도 네명이 코뿔소라면 코뿔소가 되는 삐딱한 상식이 통하면 삐딱한 역사가 만 들어지는 것이다.

북한의 동족어린이 수십만명이 기아에 허덕거리는데도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는 언론은 식량구호 성금 캠페인대신 김정일의 버림받은 여자 이야기에나 시시콜콜 열을 올리며 대북관계를 실리(實 利)없이 흔들어놓고 있다.

그것이 과연 통일을 염원하는 이시대의 역사적 숙제의 비중을 놓고 볼때 훗날 바로선 역사를 만 들었다는 평가를 받을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1996년 부자 남한은 가난한 북한 어린이들이 굶어죽어갈때 동족애를 외면했다 는 훗날 삐딱한 역사 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말이 부자지 요즘 우리의 경제는 경제대로 말이 아니다.

특히 향토의 경제는 더더욱 빈사상태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면서 위천공단 문제하나 합리적 원 칙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정부에게 할수 있는 말은 제발 너무 거창하게만 굴지말라는 충고다. 선거만 앞두면 장관등이 줄줄이 내려와 지역사업 다짐을 던지고 가고 뷔페먹인 여당후보는 그냥 두고 밥자리 한 무소속은 구속시키는 과거의 굽은 역사를 다시 그대로 모방하고 답습하면서 신당 정적(政敵)세력의 처단은 코뿔소 논리에 의한 역사바로 세우기 로 처리할때 사람들은 어느쪽이 진짜 바로 선것인지 혼동을 느끼게 된다.

부정척결은 옳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바로 세우려면 역사를 세우는자 스스로 오늘하루하루부터 올바르게 세워 나가는 모범과 양심을 보여야 한다. 총선전 김대통령의 대선자금 자진공개같은것도 역사바로세 우기의 한 모범을 보이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나치게 집요한 요구인지 모르나 역사를 바로 세운다기에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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