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남산-인간의 속내 꿰뚫어 보는듯

마치 억겁 시간의 흐름이 멎은듯 끝없는 고요함으로 사바세계를 지켜보고 있는 마애불(磨崖佛).때로 거대한 바위의 위용은 그 앞에 선 우리를 압도하고 인간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 그윽한 눈길로 세상에 앉으신 부처의 자태는 근엄과 평온같은 문자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마애불의 영토(靈土) 남산에는 비로자나불의 영원광명처럼 속세를 두루 굽어보는 거대한 두 불상군이 있다. '칠불암'과 '부처바위'. 동남산의 대표적인 골짜기인 봉화골과 탑골에 있는 이 유적들은 삼국통일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군이다. 불국정토의 상징이요 사방불의전형이다.

칠불암(七佛庵)에 이르는 길은 험하다. 남산 어느 골짜기로 올라도 칠불암에 도달할 수 있지만 홈태골과 갈라지는 봉화골이 가장 가깝다. 홈태골 어귀에서 대략 70~80m쯤에 이르러 서쪽에서 흘러드는 골짜기로 300m가량 올라가면 암자가 나온다. 이 암자를 뒤로 하고 산 정상으로 향하면 가파른 바위산이 길을 막아서듯 서있고 이 바위산 허리쯤에 칠불암이 앉아 있다. 마애삼존불과 사면석불로 합하여 칠불암이다. 투구모양의 병풍바위에 섬세한 손길로 본존여래불과 협시보살을 높은돋을새김(고부조)한 마애삼존불과 네모나게 바위를 다듬어 각 면에 여래상을 새긴 사면석불이 바로 이웃해 있다.

삼존불은 그 조각솜씨가 남산에서 첫 손에 꼽힌다. 중생을 구원하신 석가이기에 가장 크게 조성된 삼존대불. 크고 생기가 넘치는 연화대위에 결가부좌로 앉으신 본존은 엄격하고 당당하며 잔물결치듯 흘러내린 옷주름과 무덤덤하게 새긴 보주형 두광은 한없이 아름답고 장엄하다. 넓은 어깨는 곧게 펴 위엄이 서려있고 끝이 조금 치켜오른 두 눈은 먼 앞을 내다보며 성도하는 순간의 모습이 생생하다. 살결이 풍만한 얼굴로 본존여래를 향해 살포시 웃음짓는 두 협시보살은 중생제도의 업이 꿈인 듯하다. 삼존불과 2m도 채 되지않은 거리에 있는 사방불은 각면마다 여래상이 결가부좌로 앉아 화엄세계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각 여래상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가슴앞에 들고 설법인을 표시하고 있다. 약호를 든 동면 약사여래, 서면의 아미타여래와 남북면의 보생여래, 불공청취여래등 풍만한 얼굴과 곱게 다문 작은 입, 아래로 조용히 내려 감은 눈이 적멸(寂滅)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칠불암을 뒤로 하고 남산 동북쪽 탑골에 들면 먼저 불무사, 옥룡암이 반기고 통일신라시대 신인사(神印寺) 절터주변 빽빽한 노송사이로 집채만한 바위가 나타난다. 보물 201호 탑골 마애조상군(磨崖彫像群). 속칭 부처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는 높이 9m, 둘레 30m의 거암으로 불국의 신비를간직한채 묵묵하게 서 있다. 바위에 새겨진 숱한 마애불과 달리 부처바위에는 탑의 부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이하다. 북쪽면에 새겨진 9층, 7층의 이 두 탑은 얼핏 불타없어진 황룡사 9층목탑을 연상케한다. 탑신위에 살포시 얹은 복발(覆鉢)에서 최상층의 보주(寶珠)까지 상륜부가 하늘을찌를듯 늠름한 기상이다. 탑뿐만 아니다. 남쪽의 삼존불, 보살상과 동쪽의 여래상, 보살상, 비천상,나한상, 사자상등 사면에 회화적으로 묘사된 만다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모두 비바람에 심하게 마멸돼 자세한 조각수법을 알 수 없지만 이같은 만다라적 구조는 우리나라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없는 것이다.

부처바위와 칠불암에는 화엄세계의 화려한 꿈들이 새겨져 있다. 비로자나여래가 속계에 내려와그 빛이 서쪽에 비치어 극락세계가 이루어지고, 동쪽으로 유리광세계가 펼쳐진다. 때문에 신라사람들은 부처바위 서쪽에 아미타여래를,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각각 새겼고 북쪽에 석가여래, 남쪽에는 삼존불을 새겨 온누리의 부처를 맞이할 수 있는 영산정토, 극락세계를 구현했다. 버릴 것도보탤 것도 없이 한결같은 참된 진여(眞如)의 세계. 이를 희구한 옛 사람들은 바위에 진여의 형상인 부처를 새겨 시공의 벽을 뛰어넘어 후세만방에 그 뜻을 전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