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이테크 문화유산-물시계

선조들은 시각을 어떻게 측정했을까?.

그 비밀은 만원짜리 지폐의 앞면에 있는 유물에 있다.

조선의 표준 자동물시계 자격루(국보 제 229 호).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년) 장영실, 이천, 김조등이 자동시보 장치를 붙여 만든 정교한 물시계이면서 공중(公衆)시계역할을 했다.국립중앙과학관 정동찬 연구실장은 "자격루는 오늘날 많이 응용되고 있는 전형적인 자동화시스템의 일종으로 시간측정과 시보를 자동으로 제어계측한 정밀기술의 원조다"고 그 우수성을 지적했다.

일기영향을 받는 해시계에 비해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이나 밤중에도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때문에 물시계는 일찍부터 밤중의 시각을 알려주는 공식적인 시계로 정착해서 누각(漏刻) 또는 경루(更漏)로 불렸다.

자격루는 불어나는 물높이를 재서 하루 12시간과 밤시간인 5경을 재는 물시계와 측정된 시간을자동으로 알려주는 시보장치로 설계되어 있다. 일정하게 물을 공급하는 장치와 물을 받아 잣대를띄우는 항아리로 구성되며 보통 정오에 교정하였다.

물시계의 기본원리는 떨어지는 물방울 양의 규칙성을 이용한 것. 그러나 물통에서 떨어지는 물의규칙성은 물의 압력차이 때문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물통의 수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보통 물시계는 3~5개의 물항아리를 썼다.

작동원리는 물항아리 3개(위에 1개, 아래 2개)를 2단으로 놓고 물의 압력과 양을 적절히 조절, 일정하게 물받이 통으로 물을 흘린다. 수수동(受水筒)에 물이 고이면 그 속에 물에 뜨도록 만든 거북이가 떠오르면서 거북이 등에 세운 자막대로 청동구슬을 건드려서 굴러떨어뜨린다.떨어진 구슬이 청동판 한쪽을 치면 다른 한쪽이 들리면서 시간을 맡은 인형의 팔을 건드려 앞에걸어놓은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게 된다. 밤중의 시각을 알려주는 경(庚)과 점(點), 통행금지 시각인경과 바라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조명제씨(전통과학기술학회 전 회장)는 "실험에 따르면 1시간에 흘러내리는 물의 양은 약 15ℓ고지렛대 장치의 수가 약 1백50~ 200개, 청동구슬이 70여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청동으로 된 1개의 큰 물항아리(대파수호-지름 46.5cm, 높이 71cm)와 2개의 작은 물항아리(소파수호-지름 46.5cm 높이 40.5cm)가 있으며 앞에는 원통으로 된 2개의 청동제 물받이통(수수통-지름 37cm, 속지름 33cm, 높이 196cm)을 두고 그 사이를 청동대롱으로 물이 흐를수 있게 했다.대파수호(大播水壺)는 위에서 물을 공급하는 장치이며 소파수호는 이를 받아 다시 물을 수수통으로 흘리는 그릇이다. (자격루 원리도 참조)

세종때 만든 자격루는 모두 없어지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1536년(중종 31년)에 만든 것이 있다.자격루를 만든 동기는 세종때 궁월에서 쓰고있던 물시계인 경점지기(하룻밤을 5경으로 나누어 각경을 알려주는 물시계 따라서 예전에는 여름밤과 겨울밤의 각 경의 시간이 달랐다)는 정밀하지못했기 때문. 만약 시각을 알리는 관리가 착오가 있으면 중벌로 다스리기도 했다고 한다.시보장치는 12시와 5경 25점을 시각과 청각으로 알리는 장치인데 매시간과 경점을 알리는 복잡한인형기구로 되어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누각이라는 물시계가 신라 성덕왕 17년인 718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물시계를 전담하는 부서인 누각전(漏刻典)이 설치되어 박사 6명, 사(史) 1명을 두었다고 한다.그러나 671년 백제 천문학자들이 일본에 건너가 물시계제작을 지도했다는 기록도 있어 훨씬 이전부터 물시계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1398년에 경루라는 표준물시계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이물시계로 시각을 측정한 뒤 종을 쳐서 밤시각을 알렸다.

그 뒤에 만들어진 자격루(自擊漏)는 규모가 크고 만듦새가 훌륭하여 세계적으로 귀중한 표준자동물시계다.

〈李春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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