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봄이 오는 길

누군가 내게 '봄이 오는 길'을 물으면 망설임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길은 '동대구로'라고. 냉이, 쑥돋는 먼 들녘길이나 한적한 외딴 산길모퉁이쯤으로 생각했던 이들이 뜻밖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동대구로'는 봄이 오는 길이다. 여러 개의 쇠막대기로 지탱하고 있지만 동대구역 가까운 길엔 집채보다 큰 히말라야시더들이 우뚝하니 늘어서 있고, 화단엔 맥문동 잎새들이 겨울에도 늘상 푸른빛을 띄우고 있어 바라볼 때마다 은은한 담자색 꽃대를 떠올리게 한다.

두산 네거리에서부터 어린이회관 쪽으로 줄지어선 느티나무길도 자못 서정적이다. 그곳에서 범어로타리까지 길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작은 공원에는 봄이면 온갖 꽃과 나무들로 소담한 숲을이룬다.

동대구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숱한 사람들이 온갖 애환을 안고 끊임없이 오고가는 길이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들과 어깨 나란히 하고 함께 걸어갈 아름다운 삶의 길이기도 하다.때로 매연에 시달리는 나무들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멘트나 철근들로 뒤덮인 도심지에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길이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랴.

봄 맞으러 앞산이나 팔공산 혹은 먼 남쪽 바닷가나 대왕암이 있는 감포 앞바다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봄은 우리에게 찾아온다. 겨울을 인내한 이곳은 어느날 어느 순간에 만개를 위한 첫 꽃망울을 맺으며 축제의 자리를 만들지 모른다. 작은 꽃물인 듯한 가슴 속에 잔잔한 설레임의 파문을던지며, 봄비 끝에 새물이 올라 홍매 가지가 조금씩 붉어질 때쯤 가슴 속 한켠에서는 아지랑이가고물거리기 시작하리라. 그 무렵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랑하는 이와 손잡고 동대구로에 나서보면불현듯 느끼리라. '봄이 오는 길'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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