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윤기의 세상읽기-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

'예수 사랑하려고 예배당에 갔더니

내 신 훔쳐 가려고 눈감아라 하더라'

어린 시절, 교회 다니는 애들을 곯려주느라고 자주 부르던 찬송가 패러디다. 누가 만든 패러디인지 모르지만, 그 의미를 곰곰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당시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이 이 노래에 무섭게 투영되어 있는것 같아서 그렇다. 신발…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이아손은 쾌속선 '아르고'호를 타고 머나먼 북국 콜키스로들어가 '금양모피(金羊毛皮)', 즉 황금빛이 나는 양의 털가죽을 되찾아 온 영웅이다. 금양모피가 무엇인가? 사연이 길지만, 긴 이야기 짧게 하면 금양모피는 고대 그리스 한 도시국가의 주체성과 자존심의 상징이다.

이아손의 별명은 '모노산달로스', '외짝 신발을 신은 사나이'라는 뜻이다. 이아손은 그리스반도의 고대 국가 이올코스의 왕위 계승자이지만, 숙부 펠라스가 간계로 나라를 가무리는바람에 깊은 산으로 들어가 무술을 연마하면서 때를 기다리게 된다. 그가 산을 내려올 즈음이올코스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비어가 떠돈다.

"'모노산달로스'가 장차 이올코스의 왕이 되리니…"

이아손은 사연을 까맣게 모르는 채 하산한다. 강을 건너 이올코스로 들어가려는데 한 노파가 그에게 업어 건네주기를 청한다. 이아손은 노파를 업고 강을 건넌다. 그런데, 노파의 몸이 시시각각으로 무거워진다. 그 무거운 노파를 업은채 강물을 건너던 이아손은 그만 발을헛디뎌 신발 한짝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만다. 하지만 그는, 떠내려가는 신발 한짝에 연연하지 않고 노파를 업어 건네는데 성공한다. 그의 그릇을 시험한 노파의 정체는 신들의 어머니인 헤라 여신인데, 그는 이로써 헤라의 시험에 통과하게 된다. 외짝 신발을 신은 채 이올코스에 입성한 이아손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달음으로써, 말하자면 자신의 '아이덴 티티'를회복함으로써 장차 나라를 찾는데 성공한다. 너무 오래된, 너무 먼 나라 이야긴가?그러면 가까운 나라 얘기를 해보자. 5세기적 실존인물로 전해지는 달마 대사는 숭산 소림사에 주석하다가 입적한 뒤 웅이산(熊耳山)에 묻힌 선종(禪宗)의 맨 웃대 어른이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지 3년뒤, 서역의 월씨국을 다녀오던 외교관 송운(宋雲)은, 신발 한짝 만을들고 고국 향지국(香至國)으로 가는 달마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황제 효장제(孝壯帝)가 사람을 시켜 웅이산에 있는 달마의 부도(浮屠)를 열어보니, 달마의 시신은 고스란히 있는데 과연 신발 한짝이 없더라는 것이다. 달마대사 역시 '모노산달로스'가 아닌가?

유럽 옛 동화에 나오는 신데렐라는 어떤가? 신데렐라는 계모의 구박에 시달리지만 선녀의도움으로 어찌어찌해서 왕실 무도회에 참석하는데 성공한다. 신데렐라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왕자가 무엇을 단서로 신데렐라를 찾아내던가? 황급히 무도회를 떠나느라고 신데렐라가잃어버리고 간 유리 구두 한짝이다. 신데렐라도 '모노산달로스'에 속하는 셈인데 그렇다면유리 구두 한짝은 결국 무엇인가?

조선조의 고전 소설 '콩쥐팥쥐'에서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왕자는 감사(監司)로, 유리 구두는 꽃신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다. 콩쥐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감사가 무엇을 단서로 콩쥐를 찾아내던가? 황급히 잔치자리를 떠나느라고 콩쥐가 잃어버리고 간 꽃신 한짝이다. 콩쥐 역시 '모노산달로스'에 속하고 있지 않은가? 콩쥐에게 꽃신한짝은 결국 무엇인가?

요즘 들어 '아이덴티티'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정체성', '주체성', '신원'으로 번역들을 하는데 정확하게 새겨보자면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바로 '아이덴티티'다. '모노산달로스'의 잃어버린 신발 한짝 같은 것이다. 시대를 보라. 우리는 모두 '모노산달로스'가 되어 있다. 잃어버린 신발 한짝은 어디에 있는가? 찾아야 한다.한짝은 발에 신고, 한짝은 손에 들고 신발 한짝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모노산달로스'의 신발 한짝은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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