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큰언덕(대구)에 사는 사람들 답게

얼마전 라디오 프로인가 어디서 어느 아나운서가 이런 풍자를 했다고 한다. 호남출신 대통령이 나온뒤 TK출신을 붙잡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구 랑께!'라고 대답한다는 우스개였다. 예 전 같으면 '대구 구마, 와요?!'라고 했을터인데 MK(목포, 광주)쪽의 목소리가 커진 세상이 되자 TK 출신을 감추려고 '랑께!'를 붙인다는 풍자였다.

비록 실제 그랬다는 얘기도 아니고 앞뒤 말뜻은 거꾸로 득세한 MK쪽의 편중인사를 빗댄 끝에 나온 얘기였다지만 TK쪽이 들을때는 괜스레 귀거슬리는 말맛이 담긴 풍자였다. 왕조시대를 빼놓 고도 경상도쪽 사람들이 득세했던 지난 시절 호남쪽 사람들과 MK출신의 일부 출중한 인재들이 나름대로 이런저런 벼슬자리 인사에서 서운한 푸대접을 받았다고 자조하며 지낸 과거가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때는 거꾸로 호남출신 사람들이 '-랑께!'라는 고향말투를 감추고 지내야 TK 위세 속에서 버틸수 있다는 풍자도 있었다.

과연 지난 TK득세시절 MK출신들이 핍박받고 불이익을 당했던지, 또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까 경상도 출신들이 밀려야 공평성을 회복하는건지 되잖은 풍자만 주고받을게 아니라 이번만큼은 서로가 갈등을 벗어나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호남출신 인맥등용이 두드러져 보이는 듯한 물갈이 인사를 놓고 '저 사람들 설치는게 YS때 보다 더 노골적인게 아니냐'는 고까 운 평가들이 일부 TK사람들의 술자리에서 나오기 시작한다는 풍문이 여기 저기서 들려오기에 하 는 말이다.

사람이란 감정을 벗어두고 살펴보면 서로의 측면을 더잘 이해할수 있다. 우선 법조계와 군부에 의외로 호남인사들의 인맥이 강한것은 속을 들여다보면 DJ집권에 의해 갑작스레 나타난것이 아 님을 이해하게 된다.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그리고 이번에 입각한 새 법무장관, 그리고 청와대 법 무비서관은 모두가 광주고 출신 인맥이지만 전 현직 대법관만 5명, 재야 변호사까지 망라하면 광 주고 단일학교 출신 법조인은 무려 1백여명에 이른다. 군부 역시 신임 청와대 경호실장을 비롯, 현역 장성 19명을 포함해 40여명의 장성을 배출한 곳이 바로 광주고다. 뜬금없이 광주고 인맥소개를 꺼낸건 새정부의 인사에서 호남인맥이 급부상하고 있는 이상기류를 변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더더구나 '호남 충청인사들이 장차관 자리 55% 차지 하는게 무슨문제 냐, YS때는 특정고교가 요직을 모두 차지 하지 않았는가'라는 정신나간 청와대 수석의 궤변을 거 들 자는건 더더욱 아니다. MK인사가 눈에 띄게 떠오르는거나 TK들의 술자리에서 'YS때와 뭐가 다르냐'는 불평이 나오는거나 양쪽 모두 정권이 뒤바뀐 지금의 상황에서는 왕조시대이래의 케케 묵은 영남우위 호남푸대접 논란만 재연 시키는것뿐 이로울게 없다는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솔직히 김대통령이 YS의 전철을 밟지않기 위해서라도 탕평책을 써보이는 신선한 정치력을 보이 려니 기대했지만 자꾸 아쉬운 인사모습을 보이고 있는건 실망스럽지만 신뢰를 갖고 더 지켜봐주 자. 그런상황일수록 호남쪽 사람들도 과거 경상도 인맥이 강했던것이 꼭히 정치적 조정에 의한것 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좀더 우호적으로 이해해야한다. 태종때 구획된 팔도(八道)체제를 기준해봐 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전결(田結)수와 호구(戶口)수, 군현(郡縣)숫자는 단연 경상도가 컸다. 어느 정도 정치적 배려가 깔렸었다해도 인재 배출과 학맥 형성에서 호남쪽이 다소 처지는 구조적이고 경제적 지리적 조건이 있었다는 얘기다.

DJ정권의 인사 성패는 바로 그러한 영호남간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선을 조화있게 유지해나 가는데 있다. 정치 보복은 않겠다고 했지만 공직자의 인사를 지나치게 불공정하게 하면 인사 그 자체가 바로 정치폭력이고 순환보복이 된다는 사실도 유념해줬으면 한다. 우리 TK들또한 큰언덕 에 사는 사람들 답게 인사시비는 접어두고 호남인맥들이 우리보다 더 잘 해내기 바라는 박수나 치자. 잘못하면 그때 따지면 된다. 그게 '답게사는' 사람들의 도량이다.

김정길(비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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