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부자와 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시라구사이의 왕, 히에론 왕비가 한 시인에게질문을 했다.

"현자가 되는게 좋은가 부자가 되는게 좋은가?"

시인 시모니데스는 부자가 되는게 좋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부자란 현실적인 사람을, 현자(시인)는 이상추구형을 상징한다.

이 간략한 대화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부자와 현자의 관계는 지극히 대립적이며 인간은 둘을 동시에 취하고 싶어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자와 현자의 관계는 물과 불의관계 같아서 한쪽을 취하면 다른 한쪽이 사라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괴상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한 지극히 속된 부자나 맹목적인 현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둘을 겸해서 취하고자 하는게 인간의 바램이다. 이 둘의 모순을 모양좋게 극복하는일이 너무 어려운 탓에 대개의 사람들은 남의 눈을 속여서라도 둘을 함께 가지려고 애를 쓴다.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의 삶이 뒤틀리고 나아가 역사까지 굴절을 일으키는 것이다.덕망있고 청렴한 교사가 어느덧 학생을 볼모로 금품을 받기 시작하고, 뛰어난 사업가가 역사에자신의 이름을 빛내려고 정치판에 뛰어들고, 정의의 깃발을 휘날리던 지도자는 그 정의를 자기집울타리 안에만 보관하려고 뒷돈을 챙겨서 자기세력권을 넓히기에 골몰한다.

앞에서 말한 시인 시모니데스는 현자보다 부자가 좋은 까닭을, 부자들의 안마당에서 현자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그가 부자였다면 정반대로 대답했을 것이다. 현자의 명상록에서 부자의 이름이 발견되기 때문에 부자보다 현자를 택하겠다라고.

어려운 일일 테지만, 욕망을 조금 적게 갖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게 아닌가 싶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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