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韓·日 경제위기 무엇이 다른가

외환보유고 2천2백억달러, 외채 한푼 없는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도 올들어 엔화가 한때6년7개월만에 최저수준까지 떨어지고 주가·채권시세가 함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실업률은 지난 53년 이후 45년만에 최악인 3.9%를 기록, 장기불황에서 허덕이는 일본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인들이 고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본의 이러한 '경제위기상황'은 그러나 한국이 겪고 있는 경제위기와는 현상이나 원인에 있어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쪽은 '고금리에 긴축', 또 한쪽은 '저금리에 사상초유의 경기부양'을 위기탈출의 처방전으로 각각 달리제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첫째 한국은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상태, 일본은 '디플레이션'(저성장 저물가)현상를 보이고 있다.

한·일 양국의 GDP성장률은 지난해 5.5%·0.9%를 각각 기록한데 이어 올해는 두나라 모두-0.3%까지 후퇴가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에 있어서는 한국은 지난해 4.5%였던것이 올해 10%를 넘어서는 '고물가'시대가 예상되고 있는데 비해 일본은 지난해 1.6%에서올해는 0.3%로 하락, '저물가' 현상이 예상된다.

일본이 달러에 대한 엔화의 폭락행진에도 한국과는 달리 물가상승률이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이유는 극도의 내수부진과 더불어 엔화평가절하율이 한국의 원화에 비하면 극히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을 기준으로 최근까지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는 최고 50% 넘게 떨어졌다가 최근에 와서야 회복, 5일 현재 34% 평가절하된 상태다. 엔화는 지난해 7월에 비해 달러당 가치는 5일 현재 12% 평가절하된데 그쳤다. 또 엔화는 달러에 대해서 약세일 뿐 대부분의 아시아각국 통화들에대해서는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원자재나 부자재 등의 수입에 따른 물가상승요인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둘째 한국은 '기업도산 주도형 위기', 일본은 '자산디플레이션 주도형 위기'이다.영국의 이코노미스트(Econmist)지는 최근호에서 한국의 경제위기는 정경유착에 따른 금융권의 융자관행으로 기업은 정부만 믿고 국내외로부터 과다한 차입과 방만한 경영을 해왔고 이것이 결국 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96년말 현재 한국의 30대재벌의 평균부채비율은 400% 수준으로 일본의 2배에 가깝다. 이처럼 부채에 찌든 기업들이 도산하자은행들은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고 기업들에 대한 여신을 축소, 경기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은 주가폭락으로 이어졌고 국가신인도의 추락을 가져와 원화의 평가절하를 가속화시켰던 것.

이에비해 일본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80년대 이후 계속된 주가 지가의 상승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책당국의 금융긴축 및강력한 부동산 가격 억제책 등으로 급속하게 소멸되자 이 기간중 부동산·주식에 투자해왔던 금융기관들이 보유자산의 막대한 평가손이 발생, 지난 94년부터 올해까지 신용조합·증권회사·은행등 10여개의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도산하거나 도산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같은 금융권의 경영파탄은 기업들에 대한 대출금회수로 이어져 지난해 기업들의 도산이 86년이래 최고 수준인 1만6천여건을 돌파했다.

〈金大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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