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왔다갔다 교육정책 특목고 특성 퇴색

대구 일신학원 서울대반에는 대구 과학고 중퇴생이 40명이나 있다. 과학고에서 공부하는 3학년이 39명. 그렇다고 학생 숫자만으로 과학고가 일신학원에 위탁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지난해 서울대 등 주요대학이 비교내신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한뒤 불거진 이른바 '과학고 사태'가 만든 일그러진 풍속도.

세인(世人)들은 이제 과학고생들을 잊어가고 있지만 왔다갔다한 교육정책의 희생자인 과학고 중퇴생과 재학생들은 아직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대구과학고는 아주 멋진 학교입니다. 그러나 교육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대구과학고의 미래가 어둡고, 한국의 과학 장래도 없다고 단언합니다"

지난해 11월 고심끝에 자퇴한뒤 아예 문과로 바꾼 지선이(17·여)는 "과학고 졸업장 대신검정고시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후배들이 선배들의 불행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말했다. 지선이의 지난 3월 모의고사 성적은 전국 6위. 지선이는 그러나 "과학고 생활 2년여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의사가 되고 싶은 동헌이(18)와 건축공학도가 꿈인 원진이(17) 등 다른 친구들도 다행히 학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과학고가 과학인재를 기르는 곳이지 서울대에 진학시키는 학교가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그들의 반격은 매서웠다. 원진이(18)는 "과학고에서 배우는 과학은 대학수준"이라며 "과기대가 아닌 서울대 공대에 학생을 진학시켜 공학을 발전시켜도 과학고의 역할이 달성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구과학고 재학생들은 더 초조하다. "자퇴하려 도장까지 갖고 왔었으나 고교졸업장이 없는게 너무 큰 상처가 될 것 같아 차마 도장을 찍지 못했다"는 김마르다양(17)은 "과학고가 대학을 위해 만든 곳이 아닌데 대학이 과학고를 마구 흔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여전히 과학고를 사랑하는 마르다양은 동생 리브가(15)가 올해 입학하려 할 때 적극 권했다.

친구들이 학원으로 떠나버려 짝도 없는 선호(17)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학교에 남았다"며 "후배들이 벌써 자퇴 얘기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최춘택교장(62)은 "학생들이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어 큰 걱정"이라며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이 교장추천 입학생 수를 일반고보다 늘리고, 학생부 성적보다 수능성적의 비율을 높여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영국은 이튼 스쿨 학생이 명문 캠브리지대에 무시험 입학해도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아요.영국의 미래가 이튼에서 싹튼다고 믿기 때문이죠. 과학고가 한국 과학의 미래라는 것을 우리는 왜 모릅니까"

특목고의 오늘은 어둡다. 대구과학고는 입학 경쟁률이 3대 1을 웃돌았으나 올해는 겨우 1.5대 1. 대구외국어고는 정원을 채우지 못해 추가 모집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열정 대신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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