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수하르토와 IMF의 인연

드디어 수하르토의 32년 독재가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보다 조금앞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나빠졌는데다가 최근 실업자의 증가, 물가고 등 경제난이 가중되고 대학생들의 데모와 민심의 이반으로 말미암아 결국 철권통치가무너진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향한 인도네시아 국민의 승리로 기록됨과 동시에,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IMF의 성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하르토와 IMF의 인연을 따져보려면 3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수하르토의 전임자였던 수카르노는 과거 인도네시아 독립의 영웅이자 제3세계 비동맹운동의 지도자로서 국제적으로는 큰 인물이었지만 국내적으로는 16년간의 장기집권에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게다가 경제정책의 실패로 고전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를 종신대통령으로 앉히는 정치적 무리수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20억 달러라고 하는 당시로서는큰 외채에 시달리던 끝에 1964년 8월 17일 독립기념일에 외채를 비판하면서 김일성의 자력갱생 노선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다음해 독립기념일에 수카르노는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전격 탈퇴를 선언하고 자력갱생 노선을 채택하겠다고 발표하였다.그러나 급진적 노선을 취한 수카르노의 정치적 운명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바로 한달뒤 수하르토가 일으킨 군사정변에 의해 수카르노는 그 다음해 3월 권좌에서 쫓겨났다. 수하르토가집권한 1년 뒤인 1967년에 인도네시아는 IMF에 다시 가입하였고, 외환자유화, 정부지출 억제와 균형예산 달성, 공무원 수의 감축, 은행여신의 대폭 축소, 외국자본의 적극영입 등 표준적인 IMF 처방을 실천에 옮겼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나 IMF의 처방은 거의 비슷하다. 당시 IMF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단기간에 인플레 억제, 균형 예산 달성,루피아화의 가치 안정에 성공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인도네시아 경제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극찬하였다. 그리하여 미국은 서방 선진국과 일본을 끌어들여 인도네시아에 대한 대규모자금지원을 해주는 데 앞장섰다.

30년전에 IMF의 우등생으로 각광을 받고, 미국의 지지를 받던 수하르토가 이번에는 미국대통령과 국무장관의 꾸중을 듣고 권좌에서 물러나는 모습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수하르토는 국민 5백여명이 죽었다고 순순히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 그가 주동한 1965년의 군사정변때 5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1975년에는 바로 옆의 섬나라 동티모르를 침공하여 인구의 1/4인 20만명을 살해하고 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를 물러나게 한것은 인도네시아 국민의 목숨을 건 항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 결정적인 것은 미국의 사임 요구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그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수하르토와 그의 여섯 자녀의 극심한 부정부패 때문일것이다. 석유, 자동차, 은행 등 국민경제 전체를 장악하다시피 한 수하르토일가의 재산은 국민소득의 절반인 4백억달러로 추산되며, 이번 IMF 구제금융의 상당 부분도 이들이 착복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제스(蔣介石), 박정희, 마르코스에 이어 아시아 독재의 또 하나의 축이 무너졌다. 끝까지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부디 이번에는 인도네시아 국민의 오랜 염원인 민주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석유, 목재, 고무, 커피 등 엄청나게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도 식민지와 독재정권의 착취 아래 수세기 동안 가난에 시달려 온 인도네시아 국민의 생활도 민주정부 아래에서는 조금씩 나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정우(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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