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이후 새한국을 실현한다는 개혁정신은 대중의 민족정신을 기반으로 심화됐다. 기존의 민족운동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면서 사회주의 여성운동이 배태됐다. 사회주의 여성운동에 동참한 여성혁명가 정칠성(丁七星)은 원래 기생출신이었으나 3·1운동이후 화류계를떠나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섰다. 일찍이 남녀 평등 실현에 대한 꿈을 갖고 있어 17세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여장부가 되고자 승마를 배운 여성이기도 하다(잡지 '별건곤'1927년8월호, 58쪽).
1897년 대구에서 출생한 정칠성은 유년시절 이후 상경해 남도 기생들의 중심이 된 한남권번의 기적에 올랐다. 그녀가 기생이 된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당시 급변하는 조선사회의 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준다. 3·1운동 이후 화류계를 떠나 1922년 도일,일본동경영어강습소에서 수학하고, 1923년 귀국, 물산장려운동에 한때 참여하였다. 그해 10월 이춘수와 대구여자청년회 창립을 주도하고, 집행위원이 되었다.
1923년말경부터는 종래의 미온적 여성운동에 불만을 품고 '조선여자고학생상조회'를 만들어정종명·오수덕 등과 함께 여학생과 부인들을 규합, 여성해방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24년 5월23일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을 주장한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를 창립했다.
조선여성동우회는 선언문에서 '여자는 자못 가정과 임금과 성의 노예가 될 뿐이오. 각 방면으로 생활에 필요한 일을 힘껏 다하여 사회에 공헌해왔으나 횡포한 남성들이 여성에게 주는보수는 교육을 거절하고 모성을 파괴할 뿐이다. 조선여성은 이러한 비인간적 생활에서 분기하여 굳세게 굳세게 결속하자'고 강조했고, 사회진화법칙에 의해 신사회의 건설과 신여성운동에 일할 일꾼을 양성하고 훈련한다고 표방했다.
정칠성은 1925년 3월 경북 도단위사상단체 '사합동맹'(四合同盟) 결성에 참여하고, 같은 달도쿄로 건너가 '토쿄여자기예학교'(東京女子技藝學校)에 입학하고, 여성사상단체인 '삼월회'(三月會)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6년 1월 삼월회 간부로서 조선일보에 '신여성이란 무엇'을 발표하여 진정한 신여성은 모든 불합리한 환경을 부인하는 강렬한 계급의식을 가진 무산여성이라고 주장했다.1927년 5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운동의 연합체인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근우회'(槿友會·21회 참조) 발기인이된 정칠성은 '근우회' 제1회 창립준비위원회에서 회원모집의 업무분장을맡았다.
전조선여성운동의 통합단체인 근우회가 조선여자의 공고한 단결을 도모하고 조선여자의 지위향상을 도모함이라는 강령을 내걸고, 창립대회를 통해 역사적인 여성운동의 첫발을 내디딜 때 정칠성은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정칠성은 창립대회장에서 오늘날 3·8세계 여성의 날 전신인 '무산 여자의 날'(원래는 3·8이나 당시 형편상 4·16일로 하자고 함)을 맞아 시위행진을 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일본경찰의 저지로 시행되지 못했다.
1929년 제2회 근우회 전국대회준비위원회 의안부 책임자 겸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전국순회를 통해 여성의식고취를 위한 강연에 참가하는 바람에 일본경찰에 여러차례 검거되기도 하였다.
이후 정칠성은 1929년 광주학생의거와 관련하여, 조선여성동우회 정종명 허정숙 등과 함께검거 투옥되기도 하였고, 1930년 조선 공산당사건과 관련해 검거되는 등 합법적 비합법적투쟁에 진력했다.
1930년 후반 민족유일당이었던 신간회 내부에서 좌익세력들에 의해 해소움직임이 일어났을때, 근우회의 활동도 침체되어갔다. 신간회의 해소움직임은 근우회의 해소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 근우회는 해소논의를 위한 전국대회도 개최하지 못하고 해체되고 말았다.1931년 신간회가 해소되자 정칠성은 활동을 중지하고, 대구 경성 평양 통영에서 편물강습등으로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후 정칠성은 1938년 5월 장진에서 삼포금광배급소 주임을 지내기도 하면서 생을 꾸려나갔고, 광복되던 해 9월 조선공산당 경북도당에 참여해 부녀부장이 되었다. 그해 12월 좌익계여성단체인 조선부녀총동맹의 중앙위원이 된 정칠성은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여성운동가로서 일관되게 살다가 1958년 남로당계로 숙청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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