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경솔한 법문화

최근 지역 한 중견 변호사가 미국을 방문, 유수한 실업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미국인들이한국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뜻밖에도 이들중 대부분이 '한국은 법을 너무 쉽게 만들고 또 너무 자주 바꿔 투자가 겁난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IMF주눅에 한국의 세련되지 못한 법문화가 일조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법조인으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한다.우리나라의 잦은 법 제정 및 개정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여전히 사법·입법부만 해묵은 괴리의 주범으로 남아 있다.

사흘에 2번꼴 법률제정

법제관련 기관에 의하면 지난 한해 동안 법률개정은 2백50여건으로 전체 법령의 25%를 차지, 사흘에 2건이 바뀐 셈이다. 또 연간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결정도 15건이나 된다. 이는 언뜻 보기에 대단한 게 아닌 것 같지만 모법을 철저히 사수하는 법 선진국과 비교할 때경이적인 수치로 법전문가들의 단골 성토대상이 되고 있다.

외국 법학자들은 한국의 법 개·제정을 두고 언제나 '즉흥적·정치적'이라고 표현한다. 실례로 6·4지방선거 전 지역 한 유세장에서 나온 지역감정 유발 발언이 즉각 입법발의로 이어진 사례를 들 수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지역감정 유발 발언 방지법(가칭)은 사건 직후발의돼 현재 추진중이나 향후 어떤 형태로 발전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이 발의가 너무 즉흥적인 발상이며 정치성이 짙어 사법부의 반발이 크다는 점이다.한 법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같은 법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며 세계적인 망신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 법관은 말을 규제하는 것은 몇세기 이전에나 있을 법한전근대적 사고라며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법관들은 법정서를 무시한 경솔한 발상으로 엄포용으로 보고 싶지만 만에하나 제정될 경우 지역감정의 심각성을 문서화하게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현 입법 관계자들이 문서의 의미를 너무 의식, 웬만한 권장사항도 입법화하고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밖에도 잦은 개정으로 준법의식에 혼선을 초래하는 사례로 부동산 등기 특별조치법을 들수 있다. 90년에 제정된 이 법은 잦은 부분 개정으로 몸살을 앓다 급기야 폐지위기에 놓여있다.

행정부 입김 너무 거세

법 전문가들의 현 입법체제상의 문제점 지적을 대별하면 크게 두가지. 우선 행정부의 입김이 너무 거세 입법부가 견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등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주고 있다는점이다. 또 개인적인 공명심에 따른 입법 발의가 홍수를 이뤄 특별법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법령중 특별법은 2백30여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이는 결국제정하지 않아도 될 법규를 만들어 사법상의 자가당착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지금은 IMF 시대. IMF 고통을 치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법 제·개정에 있어서도 경제관련 법규의 경우 IMF 감독관들이 일일이 감시, 한국민들의 법적 자존심을 유린하고 있다. 어려운 시대에 법 제·개정 혼돈에 따른 평가절하까지 받을까 두렵다.〈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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