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대체로 통치행위에 일관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때나 민중들의 보편적 정서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이상한 결정들이 서슴없이 남발될 때다. 국민정부 출범이후 숨가쁘게 쏟아내놓은 충격적인 정책결정 그리고 그 실행과정을 살펴보면 '준비된 정권' 치고는 의외로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말하자면 뒤엉킨 국책현안 처리에 있어서 일관된 원칙을 고수해가면서 보편된 상식선을 지키기 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과 상대의 세(勢)에 따라 정책의지가 갈대처럼 왔다갔다 흔들린다는 인상이 짙다는 얘기다. 그러한 흔들림은 결국 집권그룹의 통치 권위를 잃게 만들고 실추된 권위로는 결과적으로 어느 집단 어떤 조직에도 통치의지가 제대로 먹혀 들지 않게된다. 실제 날이 갈수록 재벌 경제단체나 정치권(야권) 언론, 노동자세력 어느쪽에도 통치권이 의도하는대로 착착 권위가 먹혀드는 느낌은 적어지고 통치 스케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구석이 미흡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공론화된 원칙이 공평하게 또 끝까지 지켜지지 않으면 모든 사안이 '예외'만을 놓고 다투고 얽히게 된다. 최근 그게 제대로 안 지켜지니까 나라안이 도처에서 시끄럽게 다투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사태만 해도 정리해고에 관한 노사정 합의에 따른 상식적인 원칙을 흔들림없이 지켜주어야 한다. 수적으로 강력한 노조집단이나 물리적인 저항력을 규합할 수 없는 조그만 공장의 소수 노동자들에겐 예외없는 구조조정이 단칼에 시행되면서 다수의 노동자 집단앞에서는 힘의 논리에 밀렸다는 재계의 반발이 나온 것은 협상타결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원칙고수의 형평성에서 중재자의 권위는 잃고있는 경우다. 개인이나 소수집단에겐 가차없이 법과 원칙을 적용하면서 다수 집단이나 정치세력 앞에서는 원칙고수의 의지가 굴절되고 꺾이는 권위로는 부분끼리의 마찰만 부추길 뿐 전부를 승복시키고 통치할 수는 없다.
8·15사면복권에서 보여준 보편적 상식의 파괴 또는 집권층의 권위를 흠집내게 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집권층의 측근인 권노갑씨 경우 양심수도 정치사범도 아닌 한보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정치지도자의 인격으로 보면 부끄러운 범법자였다. 그런 권씨에게 비록 복권이 됐다고는 하지만 출옥 닷새만에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는 사실은 명백히 대중들의 보편적 정서와는 동떨어진 이상한 결정이었다. 비리에 연루된 '불명예스런' 사람에게 '명예박사학위'를, 그것도 국가 경제를 파탄낸 한보그룹의 돈을 먹은 인사에게 '경제학' 박사를 준 '이상한 결정'을 놓고 해당 대학의 양식과 함께 그를 위로하고 학위수여를 축하했다는 집권층 주변의 양식을 그야말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남투신의 경우도 신탁상풍 원금보장 불가원칙이 며칠새 원금수준은 돌려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뒤바뀌었다. 경상도 고객이든 전라도 고객이든 고객이 손해를 안 봐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정부로서는 정책실행에서 약속된 원칙의 고수자세만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부실 보증 보험회사 두곳을 국민세금 2조원을 쏟아 넣어가며 퇴출시키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이미 퇴출시킨 다른 부실 금융기관과는 형평성원칙이 흔들린 경우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권을 원리원칙보다 더 중히 여기는 사람은 오래지 않아 양쪽 다 잃게 된다'
오늘로써 출범 6개월이 되는 국민정부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정치바람과 집단 세력의 세풍(勢風)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정부'가 돼서는 안된다. 국민정부를 위해서 뿐 아니라 위기에 빠진 나라와 우리 모두의 생존과 재기를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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