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쟁에 유린당한 민생법안

천용택(千容宅)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가 14일 '야당 단독 본회의' 끝에해임건의안 자동폐기로 귀결됨에 따라 앞으로 남은 국회일정도 여야대립속에 파행으로 끝날 공산이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여야간 정치공방으로 한달 이상 지각 개회한 이번 정기국회는 종반까지도 정쟁을 계속하는 등 '민생외면'에 대한 거센 국민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해임건의안 제출후 72시간이 지나면 자동폐기된다는 국회법 규정을 활용, 표결없이 해임건의안을 무산시킨다는 전략 아래 본회의 시간에 맞춰 각각 의원총회를 소집했고 한나라당 의원들만이 모인 국회 본회의장은 자연스럽게 '여당 성토장'으로 변했다.국민회의 등 여당 의총에서는 한나라당의 천장관 해임안 제출을 '세풍' '총풍'사건으로 인한 수세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정치공세로 규정, 이회창총재 아들의 병역문제까지 거론하며 대야 비난이쏟아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날 본회의후 즉각 의원총회를 소집, 해임건의안을 재제출키로 결정하는 한편 '의회민주주의'가 유린당했다며 천장관 해임안의 최우선 처리합의까지는 본회의를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시급한 민생,개혁법안 처리에는 협조한다는 방침아래 상임위 활동에는 응하기로 했지만 이런 여야의 분위기로 볼 때 지금까지 정치공방으로 지지부진해온 상임위 활동이 정상화될 가능성은 별로 높지않다는게 국회주변의 관측이다.

게다가 지난주 한나라당이 일괄제출한 여야 정치자금, 국민회의의 대북커넥션, 경제청문회 등 3건의 국정조사요구서 처리문제를 비롯, 이회성씨 구속문제와 한일어업협정 비준안 처리문제 등 정상적 국회운영의 발목을 잡을 '지뢰'는 곳곳에 산재해있다.

시급한 민생.개혁입법안이 산적한 가운데 열린 이번 정기국회가 이처럼 정쟁 속에 제역할을 다못하고 주저앉게 되는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법안은 행정부 제출법안 2백22건, 의원제출 법안 3백55건등 총 5백77건에달해, 남은 회기동안 정상적으로 법안심의를 한다고 해도 이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요법안들이 임시국회 등 다음회기로 넘어가거나 졸속처리됨으로써 경제회복 작업의 발판을 마련하고 경제난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각종사회 구제제도의 정착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가 불확실해진 주요법안들로는 총 1백71개 법률에 달하는 규제완화조치를 담은 규제개혁 일괄 처리법안, 고위공직자의 도덕성과 적격성에 대한 심사강화를 위해 도입하려는 인사청문회법안 등이 있다.

또 공직자 부패를 발본색원함으로써 '투명사회'를 앞당기려는 부패방지기본법안을 비롯, 경제재도약을 위해 필수적인 예산회계법안과 공정거래법안 등도 처리 난망한 법안들로 꼽히고 있다.이밖에 정부조직법안과 교육공무원법안, 교원노조법안 등 정부운영의 효율화와 사회 각부문의 불필요한 논란을 마감하기 위한 각종 법안들도 경제회생의 안정적 기틀마련을 위해 뒤로 미룰 수없는 것들이다.

한달이나 늦게 개회돼 애초부터 '부실' 가능성을 안고 출발한 금년 정기국회에서 여야가 회기 막바지에 이른 이제라도 시급한 경제, 민생 관련 법안처리에 힘을 모으는 '성숙한 대화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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