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찬사가 있을까.
"'시민 케인'이후 감독들은 모두 불쌍하다. 왜냐하면 '시민 케인'이 모든 것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1941년 개봉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Citizen Kane). 후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단 한단어 '퍼펙트(Perfect·완벽하다)!'로 요약한다. 당시 미국 영화를 저급하게 여기던 프랑스인들마저 이 영화에선 경배와 찬사를 늘어놓았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주도자였던 프랑소와즈 트뤼포감독은 "미국영화에 대해 무한한 숭배감과 경의를 표한다"고 읊조렸다.
이 영화는 지금도 재상영되고 있으며 '영화 사상 최고 최대의 작품'으로 일컬어지곤 한다.1941년 5월 1일 뉴욕의 팰리스극장에서 처음 개봉된 '시민 케인'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남부러울 것 없이 생활하는 찰스 포스터 케인이라는 인물의 광기와 독단, 그리고 이룰 수 없는 꿈을한 기자가 파헤치는 과정을 담았다.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아름다움과 매서운 통찰력으로 스크린에 그린 작품이다.
공개 당시 미국을 움직이는 신문 재벌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했다는 구설수에 휩싸여 신문·방송들은 이 영화를 사장시키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는 신통치 않았다.그러나 걸작의 향기는 시대를 비웃는 법,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를 인정받으며 모든 영화인들을흥분케 했다.
케인은 '로즈 버드'(장미꽃 봉오리)란 의문의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뉴스영화기자 톰슨은 그 의미를 캐내고자 케인의 삶을 추적한다. 그는 측근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케인의 불행했던 결혼과 정치생활, 독선적인 야망의 회고를 듣게 되고 또 케인의 정부 수잔을 통해 파국의 과거도알게 된다. 케인의 화려한 명성과 부의 이면에는 도저히 벗겨낼 수 없었던 고독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수수께끼같은 마지막 말의 의미를 밝히지 못한 채 떠난다. 그리고 카메라는 불속에 던져지는 케인의 소장품들을 훑어나간다. 그속에는 그가 죽을 때까지 그리워했던 어린시절의 '행복'이불타고 있었다. 바로 로즈 버드다.
케인의 일생을 당시 할리우드 관습과는 전혀 다른 비연대기적인 시제와 다양한 시점으로 재구성한 연출도 일품이었지만 웰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기술적 완성을 선보였다.
소품, 세트, 조명, 음악 및 스크린의 여백과 그림자와 음향, 무엇보다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 각도의 창조적 구사등 영화가 배우의 대사와 행동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특히 20명 이상 등장인물을 한 화면에 잡은 딥 포커스(깊은 심도) 촬영법은 영화의 백미로 손꼽힌다.
25살이란 '어린' 나이에 '시민 케인'을 내놓은 천재 오손 웰즈는 주인공 케인처럼 불우한 여생을보냈다. 그의 두번째 걸작 '위대한 앰버슨 일가'(42년)는 그를 과격분자로 몰아갔고 이후 '맥베드'(48년) '오델로'(52년) '악마의 손길'(58년)등을 내놓았으나 그가 하고 싶은 영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스타 리타 헤이워즈(87년 사망)와 결혼(43년~47년)했으나 실패로 끝났고, 죽기전 10여년 동안 포도주 광고에나 등장하던 그는 1985년 할리우드에서 70세를 일기로 외롭게 숨졌다.
오손 웰즈는 그릇이 너무 커서 할리우드가 받아들이지 못한 비극의 거인이었다.〈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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