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파노라마 20세기문화(30)-베를톨트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투구가 필요하면 냄비를 갖다 쓰는 식이었다"연극연출가 오태석씨는 브레히트를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브레히트의 연극이론은 간단했다. 연극은 연극일뿐, 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의 몰입을 차단하고 끊임없이 관객에게 이성을 찾으라고 다그치는 연극을 창시했다. '재미' 보다는 '교훈', '감동' 보다는 '비판적 거리두기'가 브레히트 연극의 주된 미덕이다.

독일문학계의 거장이자 극작가·연극이론가로 세계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989~1956).

20세기 연극과 음악에 혁명을 가져온 예술가이지만 그에게 붙은 '좌파'란 딱지때문에 우리나라에선 10년전에야 해금됐다. 88올림픽이 열린 그해 12월 그의 연극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현실에 맞선 예술가의 방법 및 자세를 논파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20세기 문화의 최대 성과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2천년을 이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 연극론과 비견되는 서사연극 이론은 연극의 '틀'을 깨는 전위적인 것이었다.

1895년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레히트는 제1차 대전에 위생병으로 참전하면서 반전적이며 비사회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22년 제대군인의 혁명 체험의 좌절을 묘사한 희곡 '밤에 치는 북'을 발표했으며 25년에는 시민사회에 대한 도발을 곁들인 서정시 '가정용 설교시집'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마하고니시의 흥망'(29년),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29년)를 발표하면서 서사적 연극의 발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의 서사연극은 연극에 민중의 카타르시스가 배설되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달착지근한 사랑과 환상으로 가득찬 연극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이것은 연극이다'를 주입시킨다.

이상원 대구과학대교수는 "관객을 최대한 객관적인 관찰자 입장으로 만들고 배우도 보고자의 형태를 띠는 것이 브레히트 서사극의 특징"이라고 했다.

조명기를 노출시키고, 배우가 무대에서 옷을 갈아 입거나 관객을 상대로 토론을 벌인다. 무대의 전환과정도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세트도 프레카드와 문자, 자막슬라이드등을 사용해 관객의 몰입을 최대한 억제시킨다. 그래서 서사극의 이러한 효과를 '소외효과', '소격효과', '이화효과', '낯설게 만들기'등으로 불린다브레히트는 관객들을 선동해 직접적이며 강한 사회적 행동을 유발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들이 30년전쟁(1618~1648·장미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극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41년), 아이를 버린 명문 출신 생모와 하녀 출신 양모가 아이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인 '코카서스의 백토(白土)'(45년)등이다.

그러나 그의 연극과 음악, 문학에 녹은 이데올로기는 그를 끝없는 유랑인으로 만들었다. 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덴마크로 망명했으며, 40년에는 핀란드로 옮겼고 그 이듬해는 다시 미국 캘리포니아로 갔다. 이때 독일에서는 그의 책이 불태워지고 시민권이 취소됐으며, 그의 작품은 상연이 금지됐다.

1948년 미국에서도 반미활동위원회의 '빨갱이 잡기'가 시작하자 스위스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안티고네'(48년)와 '파리 코뮌의 나날'(48년)을 썼다. 이듬해 동독의 초청을 받고 동베를린에 정착했으며 56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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