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박물관 영남 구석기문화 토론회

3만5천년 전쯤 우리 영남지역에는 어떤 민족이 살고 있었을까? 그들이 빙하기는 어떻게 넘겼으며, 걸어서 옮겨 갈 수 있던 일본 땅에서와는 어떤 차이를 보이며 살았을까?

흔히 그 유적과 연구의 불모지로 여겨져 왔던 영남지역의 구석기 문화에 대한 종합적 연구·토론회가 2일 처음으로 국립 대구박물관에서 열렸다. 영남고고학회(회장 심봉근, 동아대 박물관장) 주최. 7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이기길(조선대) 박영철(부산대)교수 등 영호남 지역 관련 학자들이 대거 참가, 영남지역에서도 앞으로는 구석기 연구가 본격화될 것임을 알리는 팡파르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구석기 시대는 흔히 '너무 먼 옛날 얘기'로 치부돼 일반인들이 관심을 덜 갖는 대상.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 보면 아주 흥미 있는 부분들이 많고, "잃어버린 우리 옛 역사를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도 깊다.

거꾸로 짚어 나가자면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드물잖게 볼 수 있는 지석묘는 주로 3천여년 전에 시작돼 500여년간 계속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 그에 앞서 약 6천여년 전에 시작된 것이 신석기 시대로 대구에서는 최근 몇달 사이 처음으로 수성못 밑 상동지역 일부와 서변동 택지지구 등에서 유적이 확인됐다.

신석기 시대를 확증시키는 유물은 빗살무늬가 새겨진 질그릇들. 수성못 밑에서는 파편이 나왔고 서변동에서는 거의 완전한 것이 나왔다. 당시 사람들은 거의 물가에 살았다. 청동기 시대에 낮은 산에 성읍(城邑)을 이루고 살면서 농사에 종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재미도 생기는 대목이다.

구석기 시대가 흥미를 끄는 것 중 하나는, 당시엔 아직 우리나라와 일본이 바다로 갈라지지 않았을 때라는 점. 인류는 주로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며 퍼진 것으로 짐작되며, 6천여년 전에야 일본과 단절됐음을 생각하면 그 사이의 문화 교류가 흥미롭다. 또 구석기 시대 중 '후기'로 분류되는 3만5천년∼1만2천여년 전 기간은 빙하기이기도 해 그들의 생활이 더욱 관심거리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까지 관동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유적이 발굴됐으나 우리나라 영남지역에선 유적 발견이 늦어져 의아심을 샀었다. 90년대 들어서야 유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신도시 조성 때 확인된 부산 해운대 유적, 운문댐 건설 때(95∼96년도) 나타난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유적, 작년의 진주 내촌리 유적 등이 아직까지도 발견된 전부이다.

영남고고학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동주(동아대 박물관) 연구원은 "이번 학술발표회는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선사시대 동북아 문화 교류 검증 등에 종합적·본격적 관심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朴鍾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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