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고승덕 코미디의 교훈

서울 송파갑재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고승덕변호사의 한나라당 후보 사퇴 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낮은 정치수준을 한 눈에 보는 것 같아 정치개혁은 멀었다는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우선은 우리나라 정치를 멍들게 하고 있는 3연(緣)의 고리가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고변호사가 국민회의 문을 먼저 두드렸다는 국민회의 주장과 한나라당의 문을 먼저 두드렸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이 엇갈려 있지만 어쨌든 국민회의가 공천을 하지 않은 것은 장인이 자민련 박태준총재라는 혈연적 요인을 고려한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리고 한나라당 후보를 사퇴한 것은 한나라당에서는 외압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분명히 "혈연이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혈연의 두꺼움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의 3연중에 혈연이 강하게 작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정서가 아직은 혈연을 중시한다고는 하지만 최고의 지성을 갖춘 사람까지 정치적 소신과 혈연적 고리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 정치의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장인인 박총재의 처신도 문제는 있다. 아무리 사위라 해도 정치적 소신을 가족 분위기에 의해 바꾸게 했다는 것은 역시 공당의 대표자로서는 올바른 행동이었다고 할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는 것은 21세기 새정치문화를 기대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정치개혁의 일선을 담당해야 할 '젊은피'는 젊다고 무조건 희망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점에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고변호사는 최고의 학력에 최고의 경력에다 매스컴시대라는 새시대에 맞는 언변까지 갖춘 정치인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야망만 있었고 철학과 소신을 갖추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소신이나 소속 당을 함부로 바꾸는 일은 적어도 지금의 국민정서로는 혐오의 대상이자 기피의 대상이다.

후보신청과정에서도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등 소신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권의 표현대로 그는 국민회의에 이력서를 내고 한나라당서 공천을 받고 자민련서 사퇴서를 쓰는 코미디를 연출한 것이다.

여야는 서로 정치 도의를 잃었니 게임 룰을 지키지 않았느니 하는 명분 싸움에 휘말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다 기준을 두느냐에 달려있는 문제다.

현재로서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아직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머물러 있었어도 안된다는 점이다.

정보화 사회와 민주주의에 맞게 행동하려면 가족문제보다는 국가문제가 우선이고 혈연적 고리보다는 정치적 소신이 우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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