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과 공간-(17)금산사 미륵전·화엄사 각황전

초파일이 멀지 않다. 이날 절을 찾는 불자들의 마음에는 부처님만 가득하겠지만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아스라히 남아있는 전통 사찰건축을 눈여겨 보고 그 옛날 대목(大木)들의 활달하고 정교한 솜씨를 재음미해보는 것도 시간낭비는 아닐성 싶다.

특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중층(重層) 목조건물의 경우 법당내 마루바닥에 앉아 내부를 찬찬히 뜯어보거나, 법당 뜰을 거닐며 피부로 전해지는 장엄한 형식미에 젖어 보는 것도 좋다. 영겁의 시간이 따로 존재할까.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는 '기러기떼가 호수에 앉은 듯이 당탑(堂塔)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사찰 목조건축물들은 고려시대 중기인 12세기 이후의 건물들로 그나마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된 것이다. 특히 중층 목조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대표적인 중층 건축으로는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무량사 극락전, 법주사 팔상전, 쌍봉사 대웅전등. 어떤 것은 목조건물로 분류되고 어떤 것은 목탑으로 불린다.

팔상전과 지난 83년 불에 타 소실된 것을 복원한 화순 쌍봉사 대웅전은 목탑이다. 목탑은 중층 건물과 달리 내부가 발달하지 못하고 막힌 구조로 되어 있는게 차이점이다.

전북 김제 금산사. 임란때 완전히 불타 없어진 대가람이다. 1635년 중창된 국내 유일의 3층 목조건물이 남아 있는 사찰이어서 그지 없이 소중한 가람임에 틀림없다.

'미륵전'. 높이 15m에 달하는 이 전각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가람배치로 볼때 수직의 미륵전은 동쪽에서, 7칸의 기다란 건물인 수평의 대적광전은 서쪽에서 중심을 잡으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의 대적광전보다 오른편의 미륵전에 눈길이 먼저 간다.

미륵전은 겉보기에 3층이지만 내부는 하나로 터진 통층구조다. 높고 깊은 공간에 11.5m에 달하는 미륵삼존입상이 우뚝 서 있다. 결국 미륵전은 키가 큰 미륵불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크고 높은 그릇인 셈이다.

특이하게도 1층부터 대자보전(大慈寶殿), 용화지회(龍華之會), 미륵전(彌勒殿)등 3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1층 칸살은 정면 5칸·측면 4칸으로 바닥면적이 79평에 이른다. 2층은 1층보다 반칸씩 줄어든 3.2칸에 면적은 50평이고 같은 비례로 줄어든 3층은 28평이다.

내부에는 10개의 높은 기둥(內陣高柱)을 세워 3층까지 올라가도록 만든 구조다. 고주는 적당한 목재를 구하기 힘든 탓인지 여러 개의 부재들을 합성해 사용했다.

2·3층은 벽체를 낮게 세워 중층 건물 특유의 비례를 갖고 있으며 전면 벽에 띠살모양의 광창을 설치해 햇빛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륵전의 각 층 비례나 전체적인 형태가 썩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중창이후 일곱차례나 개수됐음에도 추녀 부분이 처지는 변형이 계속돼 건물 전체 형태가 둔중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건축가 김봉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는 "한국 고건축 가운데 가장 극적인 내부공간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제일의 목조건물인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높은 석단위에 큼지막하게 버티고 서 웅장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마치 너른 경내를 가득 메울 태세다.

빛바랜 단청과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활주(活柱)가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팔작지붕의 중량감이 넘친다.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에 초창된 각황전은 조선 선조 39년(1606년)에 재건된후 숙종 29년(1703년)에 중창돼 오늘에 전한다.

하지만 1930년대 일본인들이 완전 해체 중수하는 과정에서 "우리 건축의 구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왜곡시켰다"고 고건축가 신영훈씨는 말하고 있다.

각황전은 외부는 2층이지만 안은 상하층이 한공간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 내부는 키 큰 고주(高柱)들이 열을 짓듯 장대하게 서 있어 과히 볼만하다. 더러 굽은 기둥이 자연스럽고 화려한 다포식 공포와 기둥에 걸친 각양의 가구(架構)들이 특이하다.

금산사 미륵전과 마찬가지로 불상 지붕인 '닫집'이 없어 밋밋하지만 천장구조를 그대로 볼 수 있고 내부가 훤히 뚫려 시원한 감도 든다. 옛 기록은 이 땅에 고층 법당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현재 얼마 남아 있지 않아 각황전을 통해 그나마 전통양식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목탑의 구조는 어떨까. 현존하는 옛 목탑의 전형을 법주사 팔상전에서 찾을 수 있다. 국보 제55호 팔상전(捌相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부분으로 나눠 그린 팔상탱화를 안치한 건물. 1626년 중건된 팔상전은 신라시대의 기지석(基址石)위에 5층 탑신과 상륜(相輪)이 높게 올려져 안정감 넘치는 목탑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팔상전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5칸 규모로 비례와 균형이 뛰어나다. 팔상전은 3가지의 기둥이 전체 하중을 떠받치고 있다. 건물 바깥 부분에 서 있는 평주(平柱)와 가장 굵고 각 층의 힘을 받치는 기둥인 찰주(擦柱), 가장 중심에 있는 사천주(四天柱) 순으로 나란하게 서 있다.

다층의 목조건축을 위한 기본적인 구조법이다. 특히 다층 목탑구조의 중심에 서 있는 심주(心柱)인 찰주는 목재를 이어가며 상륜부에 닿도록 위로 올려받쳐 세워 각 층을 이루는 기간이 된다. 황룡사와 같이 아무리 높은 탑이라도 이 방식으로 지어졌다.

이제까지 살펴보았듯 중층 목조건물은 기둥의 미학이다. 높고 깊은 건물내부에 장쾌하게 서 있는 기둥이야말로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핵심기제다.

따라서 이같은 건물에서는 선이 굵은 기둥들을 자유자재로 다룬 장인들의 손재주를 볼 수 있고, 갖가지 부재들이 정연하게 덧대어진 역학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창공을 향해 매끈하게 들어 올려진 추녀끝과 가지런한 처마가 빚어내는 조화미는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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