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조희연)-드렉셀과 현대증권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지만 때로 언론에 의해 축소보도되는 사건들이 많이 있다.

얼마전 금융감독원에 의해 공개된 현대그룹 주가조작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창 잘 나가는 바이코리아 펀드를 발행하는 현대증권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한 시민단체가 벌리고 나서기까지 하는 이 사건의 내용은 간단하다.

1998년 현대중공업 및 현대상선이 22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여 현대전자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였고,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준 의원, 정몽헌, 정몽규 회장 등 정씨 일가가 막대한 양의 현대전자 주식을 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식시세조작의 창구역할을 현대증권이 하였다는 것이다.

주가조작과 내부자거래는 시장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준범죄행위자 일반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사기'행위라고까지 말해진다. 현대그룹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최고의 재벌이다.

그런 한국최대의 재벌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풀려 투자자를 속였을 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의 보유주식을 처분하여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기는 부도덕한 내부자거래행위를 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한국재벌의 적나라한 현주소이다.

이러한 천민적인 모습이 21세기를 눈앞에 둔 한국최대재벌의 실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사건이 미국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는 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상징적 사례가 있다. 얼마전 출판된 '정크본드에서 헤지펀드까지'라는 책을 보면 한때 정크본드의 황제로 촉망받던 드렉셀 회사 밀컨의 파산이야기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90년 11월 미국 연방법원은 정크 본드의 황제라고 일컬어지던 밀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영구히 증권거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였다. 또한 6억5천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했다.

혐의는 부당 내부거래를 통해 펜실베이니아 엔지니어링이 피쉬버그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도록 도와주고 그를 통해 500만 달러의 수수료를 챙겼고, 회사 관련 정보를 부당하게 친구 보에스키에게 넘겨주고 100만 달러를 챙겼다는 것이었다.

80년대 미국 금융가를 정크 본드 하나로 좌지우지하였던 전설적 인물 마이클 밀컨은 이렇게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투자자의 신뢰를 상실한 서열 2위의 드렉셀은 90년2월 연방법원에 파산신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점에서 현대증권 주가조작사건은 밀컨 사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한 정부의 감독부서, 검찰 및 사법부의 엄정함이 우리 사회에는 없다는 것이다.

주무부서라고 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의 대표이사만 검찰에 고발하고 현대증권에 대해서는 말단직원에 대한 감봉조치만 요구하고 임원에 대한 제재나 영업정지 등 행정제재를 취하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는 엄정한 법적 심판을 내리려 하기 보다는 빅딜을 강제하는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물론 검찰은 고발되기만을 기다리며 모른 체 하고 있다.

현대그룹의 지배주주인 정씨 일가가 자신들의 주식이 관여된 주가조작사건을 몰랐을 리 없다.

이런 점에서 관련된 정씨 일가와 계열사들이 내부자거래 혐의로 검찰에 의해 수사받는 것이 법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확인하는 길이다.

주가조작의 창구역할을 한 현대증권에 대해서도 영업정지 등 응분의 행정조치가 내려지고 관련임원들은 형사고발되는 것이 법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IMF시대라고 하는 고난의 시기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는 뭔가 달라져야 한다.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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