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영남기행-(19)시골장터

시골장. 질펀한 막걸리 내음에 아낙네들의 분답한 흥정.사람 사는 냄새가 배어 있고 세상 보는 재미가 있던 곳.

이런 시골 장터가 언젠가부터 마을 뒷동산처럼 아스라한 추억으로 멀어지고 있다. 이제 장마당에선 만남의 반가움과 약장수의 능청은 사라졌다.

대신 확성기의 공허감과 노인네들의 무료함만이 자리할 뿐.

그래도 장날에는 장이 선다. 예전의 흥청거림은 없지만 장꾼과 시골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냥 재미지. 혼자 사는 노인네가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죽는 일밖에 더 있겠어".

청송군 화목 5일장에서 만난 신필순(78) 할머니. 장거리 중간에 오이, 고추 모종을 놓고 파는 신 할머니는 의성에서 시집온 뒤로 60년째 화목장 한편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장옥이 20여채에 불과한 화목장은 시골장 치고도 규모가 작은 편.

"예전엔 정말 대단했지. 이른 새벽부터 해질때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볼거리도 많았으니까" 오지로 불리던 청송에서도 외떨어진 안덕면. 이곳 사람들에겐 장날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요즘은 장이 서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10년전 국도가 뚫리고 버스가 곳곳을 누비면서 장이 완전히 죽었습니다"

20,30리 길을 걸어 다녀야 하던 시절 장보기는 하루 일이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 막걸리 한사발과 국밥 한그릇에 시집간 딸 소식을 듣고 세상 소식 듣는 것이 장날의 풍경. 하지만 버스가 등장하면서 장은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그만큼 흥청거림도 사람도 줄었다.

"왜 요즘 도회지 사람들이 야시장이라고 하는 것 있잖아. 장날이 꼭 그런 모습이었지" 장옥 한켠 건어물 가게를 지키고 있던 돔배기(상어고기) 최씨(78) 영감이 대뜸 거들고 나왔다. "장터 한켠에 막걸리 집과 음식점이 즐비했다"는 최씨는 "지금은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문닫은 상가를 가리켰다.

60년을 장에서 보내왔다는 최봉용씨는 "돔배기 최씨 영감 하면 장꾼 치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인생 경력을 내보였다.

"이거 팔아 딸 넷, 아들 한놈 다 키웠지, 차가 귀할땐 장꾼끼리 장터로 몰려 다니며 살았는데 요즘은 모두 출퇴근이야".

진보와 영천장에도 장옥을 가지고 있다는 최씨는 "주말에는 노인네들이 도시 사는 아들, 손자 온다고 장에 나오지 않아 거의 파장 분위기"라고 했다.

도시와 떨어져 있는 화목장은 그래도 형편이 좋은편.

안동시 일직면 운산장은 '장'이라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장날인데도 전을 편 장사꾼은 고작 10여명 안팎. 지난해 면에서 장날 부흥을 위해 신축한 '장옥'도 모두 텅하니 비어 있었다. 30년 동안 과일 장사를 해왔다는 김정순(69·여)씨는 "전부 시내버스를 타고 안동시내로 장을 보러 간다"며 "늙은이 몇명 모여 사고 파는 노인장"이라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시절의 변화와 상관 없이 '옛 모습'을 간직한 곳도 있다.

시골장을 찾아나선 지 3일째.

길에 선 채 벌어지는 흥정.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욕소리'. 취재진이 이른 아침 도착한 문경장은 '활기'가 넘쳤다.

"빨리 돈을 받아 가라니까" 시골장의 흥정은 '도시'와는 달랐다. 산나물이 담긴 자루를 상인에게 뺏긴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낙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들어왔다.

물론 애써 캐온 나물을 한푼이라도 더 받고 팔기 위한 것.

시골장 거래는 도시와 다르다. 일단 흥정이 붙은 물건은 옆사람이 아무리 탐이 나도 나서지 않는 것이 나름의 규칙. 따라서 한번 흥정이 붙으면 30분 이상 가는 경우도 흔히 있다. "두릅 10단을 다른 사람보다 1천200원이나 적게 받았다"며 속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경순(57·여)씨는 "그래도 나물 판 돈이 시골 살림에 적잖은 보탬이 된다"며 어물전으로 향했다. 봄이면 문경장에는 두릅과 취나물등 산나물이 쏟아진다.

따라서 곳곳에서 상인이 몰려들고 그만큼 '장 냄새'가 풍긴다.

전국에서 제일 크다는 영천장과 의성장도 시골까지 파고든 할인점과 상설 시장의 위세를 아직은 막아내고 있다.

도시 사람들에겐 '색바랜 사진'처럼 다가서는 시골장의 풍경들. 예전처럼 '바깥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골 사람들에겐 '생활'의 한 부분인 장날이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지.

---영천장 짐통북 지킴이 권재락씨

"처음 하는 사람은 탁 돌면서 박자 맞추는 것이 제일 어렵지"

영천장에서 만난 권재락(58)씨. 그는 장터를 지키는 마지막 짐통북 세대다. 짐통북이란 북과 심벌즈를 등에 메고 북채를 줄로 연결해 발로 박자를 맞추는 것. 한국판 샌드위치맨인 셈.

권씨는 올해로 짐통북을 연주한지 38년째. 우연히 장터에서 짐통북을 접한 뒤 '너무 멋있어 보여' 조수로 따라나선게 지금까지 오게 됐다는 설명. 현재 권씨가 파는 물건은 2천원짜리 먼지털이지만 상품은 수시로 변한다.

"이제 전국에서 짐통북을 치는 사람이 3명 남았는데 내가 제일 젊다"고 밝힌 권씨는 "타고난 끼가 없으면 이 짓으로 밥벌이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권씨의 연주 실력은 '신기'에 가깝다. 옆사람과 몇번을 부딪쳐야 갈수 있는 시장 바닥을 그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며 앞뒤로 돌며 연주를 한다. 그가 펼치는 무대는 노래 한곡 단위인 3분 정도. 그래도 한곡이 끝날때마다 땀을 비오듯 흘린다.권씨는 "요즘은 백화점 행사나 체육 대회등에 초청되는 경우가 흔한데 하루 일당을 20만원 받는다"며 "지난해 IMF가 터진뒤 짐통북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줄을 이어 밥줄이 끊어질 뻔 했다"고 웃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한달을 견디지 못해 북통을 내던졌단다. 죽을 때까지 짐통북을 메겠다는 권씨. 타고난 장꾼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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