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영남기행-(23)대구의 젖줄…신천의 현주소

이젠 대구다. '대구는 영남의 중심인가' 이 화두를 풀기 위해 눈길을 대구로 돌렸다. 먼저 '대구의 젖줄'로 자리잡아 가는 신천의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보면서 이 어렵디 어려운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기로 했다.

신천(新川)은 대구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인가.신천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콘크리트 제방으로 둘러싸인 멋없고 무미건조한 강인지, 오갈 곳 마땅찮은 도시인들에게 유용한 공간인지….

97년 신천종합개발사업 이후 물이 불어났고 시설물도 크게 늘어났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흡족한 수준은 아니다. 다듬어야 할 여지도 많은 미완성 작품이다.

-동서연결 다리만 14개

강이 대개 그러하듯 신천은 지역을 대표한다. 금호강 8개 지류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달성군 가창면, 수성구, 중구, 동구 등을 관통하는 대구의 중심임에 틀림없다. 신천도로나 신천동로가 강 양쪽을 따라 뻗어있고 대구의 동서를 연결하는 14개의 큰 다리가 걸려 있는 곳이다.

신천의 중요성을 강조해 '대구의 세느강'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지만 진정한 대구의 젖줄로 자리매김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스럽다. 주말 신천둔치에 나가보면 강의 유용함을 새삼 절감한다.

강변을 달리는 사람, 다리밑에서 춤추는 중고생들, 농구하는 아이들, 잔디밭에 앉아있는 연인들….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평화롭고 여유자적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김상민(38·남구 이천동)씨는 "집에 차를 두고 용두방천길을 따라 걷고 사색에 잠기는 것이 요즘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더욱이 여름이 되면 인근 주민들은 밤이면 더위를 피해 이곳에서 간식을 먹고, 잠을 자기도 한다. 새벽운동에서부터 생활공간까지….

여기에서 단순한 휴식처라는 의미를 떠나 종합적 생활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앞뒤편 도로로 무섭게 질주하는 차들을 지켜봐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신천 유지수 하루 10만t

현재의 신천 모습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50여년동안 신천변에 살아온 정진섭(62)씨. "온통 콘크리트 덩어리밖에 없으니 정이 가지 않아. 6·25전만해도 이곳에는 집도 몇채 없었고 뽕나무밭과 부추밭으로 가득했지. 멱감고 물장구치던 그때에 비하면 턱도 없지"

정서적 반론을 제쳐놓더라도 신천개발에 대한 대표적 반대론자들은 환경단체일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신천을 환경문제의 주요 타깃으로 잡고 신천 제모습 찾기운동을 벌여왔다.

환경단체의 한 간부는 "신천에 환경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된 부분은 제방에 무성한 '잡초'밖에 없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대구시는 공공근로사업 등을 통해 매년 제방에 무성하게 나있는 풀을 뽑아왔지만 환경단체들의 요구로 97년이후 이를 중단했다.

신천 발원지에서 강하류까지 내려오다 보면 눈에 띄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윗물이 맑지 못한데 아랫물이 괜찮을리 있겠는가. 발원지인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는 음식점, 여관 등이 대거 몰려있어 깨끗함을 기대할 수 없었다.

가창면 삼신리, 옥분리, 냉천리 등을 지나면 축산농가의 분뇨가 여기저기 쌓여있고, 인근 농가들은 신천에서 물을 퍼올리고 있었다.

신천은 상류부터 견디기 힘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곳에서 하루 5만∼6만t(가창댐 포함)의 물을 취수해 시민들의 식수로 이용하고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끔찍해졌다.

상동교에서부터는 시멘트 일색. 이 다리에서부터 드문드문 보이던 식물도 사라지고 인공적인 냄새가 확 풍겨온다. 신천통수 사업이 시행되는 출발점이어서 물 양이 크게 불어난다.

대구시가 하류에서 하수를 정화해 매일 10만t의 물을 이곳까지 퍼올려 신천유지수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상동교∼침산교까지 신천에 걸려있는 12개의 다리주변은 인근 아파트 숲과 어울려 도시특유의 음울한 회색빛을 띠고 있다. 정제된 인공미. 각박함을 더해줄 듯한 풍경. 신천의 오늘이다.

-수백억 투자 성과는 미비

대구시는 유지수를 늘려주면 신천이 크게 변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말 영천댐 도수로공사 등이 끝나면 하루 14만5천t의 깨끗한 물을 상류로 끌어올릴 수 있어 악취가 없어지고 시민들이 맘놓고 찾을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

시민·환경단체들은 수질향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52) 회장의 얘기.

"대구시가 이제까지 신천을 개발한다고 수백억원을 투자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신천동로 건설로 인해 생태계가 복원될 여지를 없애 환경적 측면에서 이제 신천 제모습 되찾기가 어려워졌죠. 이제라도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잡으려면 물막이 보를 제거해 신천에 잠겨있는 공룡발자국 등 지리학적 유산을 보존하고 투명성있고 공개적인 환경정책을 펴는 것이 필요합니다"

환경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최근 한강제방을 콘크리트대신 돌망태 등으로 바꾸기로 한 것을 들어 신천도 새 제방구축, 수변 가장자리의 굴곡화, 생태테마공원 등 환경친화적 환경으로 탈바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계명대 김종원교수는 "신천에 적합한 생태계를 복원시키면 신천은 앞산, 수성못, 금호강, 팔공산의 생태계 등을 연결하는 축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있다.

신천이 시민의 젖줄로, 종합적 생활공간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시민들의 지혜와 고민이 모아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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