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옷장수가 쾌척한 10억

"젊은이들이 돈이 없어 목숨을 잃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내 전재산을…". 서울대병원에다 평생에 걸쳐 모은 재산 10억원을 쾌척한 옷장수 할머니 김선용(金善鏞.71)씨는 진정 이 시대의 서민들과 호흡을 함께하는 '활불(活佛)'인듯 싶다. 온갖 거짓과 위선, 사술이 얽혀 돌아가고, 그나마 제 거짓말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싶을 땐 눈물이나 찍어 누르는 시늉들이 하루종일 비쳐지는 게 요즘 세상이다. 평양 출신인 김할머니는 6.25피란으로 지병으로 앓아 누운 남편대신 부산 국제시장에 뛰어들어 바닥인생을 살아왔다. 누구들 처럼 '자식들에게 고기도 제대로 못 사먹이고…', '김치도 제대로 못 담갔고…'라는 씨도 먹히지 않는 말한마디 없이 살았을 것이다. 황차 무슨 노는 손이 있어 '성경에 손을 얹고…'하겠으며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어쩌구 흰소리를 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김할머니가 판 옷은 무슨 재킷이니 앙상블이니 망토니 하면서 서민아주머니들로선 혀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수십, 수백만원대의 서양옷들이 아니다. 결혼 패물들을 팔아 잠옷장사를 했을 뿐. 김할머니의 손자가 한 말은 그녀의 삶이 너무나 한국적인 여인상의 전형이었음을 알려준다. "할머니가 점심식사를 제대로 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는 것. 김할머니의 삶 전체가 이렇듯 희생과 절제로만 이뤄진 판에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할 리 없다. "54살 된 외동딸이 속으론 섭섭했을 텐데 엄마의 뜻에 선뜻 동의해줘 고맙게 생각해요". 과연 '호부(虎父)에 견자(犬子)없다'는 옛말이 그냥 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확실히 우리 사회는 이름없는 의인(義人)들에 의해 생명력있게 꾸려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청문회에 나서서 온갖 재간을 다 부리는 여인네들이야 그냥 한차례 지나가는 인생들일 뿐.

최창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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