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펼친 소설책 속 단풍잎 하나에도 가슴설레는 추억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세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가들의 작품이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예술가의 고뇌와 사랑, 시대적 상황이 흠뻑 배여있는 작품의 창작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와 친근감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해본다.
편집자 주
그대는 나에게 타오르는 기쁨을 준다오…나에게 너무 잔혹하게 대하지 말아주오…당신의 손에 기쁘게 입맞춤 하도록 허락해주오. 당신을 내게 보여주오… 아아! 당신을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데…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오.
-로댕
세상에는 많은 '관계'가 있다.
하지만 근대조각의 선구자 오퀴스트 로댕(1840~1917)과 까미유 끌로델(1864~1943)만큼 상대와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었던 이들이 또 있을까.
스승과 제자에서 시작돼 작가와 조수·모델을 거쳐 연인으로, 마침내는 배신과 결별로 파국을 맞는 이들은 세계 예술사에 있어 가장 극적인 여운을 남긴 커플로 꼽힌다.
영화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던 이들의 사랑은 1883년 끌로델의 스승이었던 알프레드 부셰가 제자였던 그녀를 로댕에게 맡기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2년 후 로댕의 조수가 된 끌로델은 '여명' '지옥의 문' 등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당시 갓 스무살을 넘은 끌로델은 매우 조숙하고 개성적인 미모의 소유자이면서 천부적인 자질을 가진 조각가였다. 24세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당시 로댕의 작품 중 끌로델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키스(1886)'를 꼽을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긴장된 포즈, 견고한 형태 속에 감춰진 격렬한 에너지를 통해 인간의 고뇌와 성찰을 담았던 로댕의 기존 작품과 비교할 때 '키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튀는' 작품이다. 로댕의 전매특허인 팽팽한 근육과 준엄한 표정대신 포옹한 두 인물의 입맞춤에선 농밀한 관능이 배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남녀의 모습에서 로댕과 끌로델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행복의 순간은 짧기에 더욱 가치있는 것일까. 1886년 '나는 다른 어떤 여자와도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며…'란 내용의 편지를 통해 끌로델과의 결혼을 약속한 로댕에게는 아이까지 낳은 동거녀 로즈 뵈레가 있었다.
요즘같으면 '혼인빙자 간음죄'로 처벌됐겠지만 우유부단하고 현실적이었던 로댕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둘 사이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서 또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여기 계시다고 생각하고 싶어서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은 변해버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저를 속이지 말아 주세요'
모든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치는 듯한 내용을 담은 편지까지 띄우며 로댕을 그리워 하던 끌로델은 결국 로댕의 아이를 유산하고 그의 곁을 떠났지만 이후 그녀의 삶은 '파탄' 그 자체였다. 작가로서 성공도 좌절된 채-로댕의 음모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배신감에 시달리던 끌로델은 로댕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두려움에 떨다 프랑스 몽드베르그 정신병원에서 79세의 나이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근대조각의 선구자, 오퀴스트 로댕. 그는 위대한 '조각가'였지만 동시에 자신을 향한 여자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 어리석은 '남자'이기도 했다.
金嘉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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