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동티모르 비극과 국제사회의 대응

세계 정치에 있어서 한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의 동이 트고 있다. 아무도 새로운 시대의 성격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 낙관주의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세계정치를 평화와 번영으로, 비관주의자들은 불안정과 지역적 갈등, 국가간의 불평등 고조, 신생 독립국가의 분출을 이유로 더 많은 위험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세계가 이전의 세계보다 제3차 세계대전을 폭발시킬 수 있는 충돌의 위험성을 줄였다는 측면에서 덜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안정의 측면에서 불안정의 요소가 많다.

지금 세계는 팽창주의, 민족주의, 인종적 이기주의, 종교적 극단주의, 테러리즘과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역 분쟁은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 50개국 이상이 내전과 시민폭동, 전쟁상태이며 갈등과 폭력의 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지금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동티모르 사태는 세계정치에 평화, 안정, 질서의 구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동티모르는 멀고 낯선 곳이다. 450여년동안 그곳을 식민지로 삼았던 포르투갈이 철수하자 1975년 독립 9일만에 인도네시아가 침공했고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강점됐다. 그때부터 인도네시아군과 반군간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외부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동티모르는 지난 8월30일 유엔 감시 아래 치러진 선거에서 78.5%라는 압도적 표차로 독립을 택했다. 그때부터 인도네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반독립 민병대가 살인극을 벌이면서 주민들을 내쫓고 약탈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20만명의 주민들이 집을 떠나 난민이 되었고 수천명이 살해됨으로써 동티모르는 열대지옥, 죽음의 섬으로 변했다.

동티모르인들은 극도의 공포감, 언제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기력상태에 빠져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이 발생했을 때 국제사회는 팔짱만 낀채 구경만 하거나 한가하게 기다릴 수 없다. 당사자가 문제해결을 못할 땐 국제사회의 신속한 개입이 필요하다. 국제연합의 국제평화유지군 파견과 한국의 상록수부대 파병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절절한 대응이며, 동티모르의 비극이 다음 세기에 반복되지 않고 대량학살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개입이라고 생각된다.

동티모르에 중대한 경제적 이익이나 전략적 이익이 걸려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구 85만, 소득 220달러의 동티모르는 작고 가난하지만 국제사회는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인 테러행위와 인권학대에 책임을 포기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 계획적, 체계적 살인은 문명세계에 대한 도전이다. 민족갈등이나 종교갈등이 벌어질 경우 세계가 그것을 막을 힘이 있다면 대학살과 민족청소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한 민족이 민족자결, 자치정부, 인권확립과 질서를 창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고 있다. 동티모르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독립은 멀고도 먼 길이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유엔,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인이 스스로 선택한 미래를 안전하고 확고하게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그곳의 항구적 평화구축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김 호 준

부산외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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