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38)씨는 지난달 말 초등학생 아들의 운동회를 앞두고 부부싸움을 벌였다. 원인은 운동회 때 내야 한다는 학교발전기금. 학부모들간에 소문난 하한선이 5만원이라며 적어도 10만원은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부인의 말에 화가 난 박씨가 언성을 높이고 만 것.
이튿날 짬을 내 운동회장을 찾은 박씨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운동장 가운데 '학교발전기금 접수처'란 팻말을 내건 천막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학년별로 수십명씩 줄을 서 있었다. 부인의 말대로 기본이 5만원이었고, 운영위원들이 학반, 이름과 기부금 액수를 적고 있었다. '내 아이가 혹시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박씨도 5만원을 내고 말았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대구지역 상당수 초등학교들의 운동회장이 학교발전기금 모금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일부 학교는 운동회 이전에 학교운영위원회나 어머니회를 통해 공공연히 기금모금을 알렸고 운동회 당일에는 운동장에 접수처를 만들어 학부모들의 모금을 독려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돈은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1천만원을 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부터 8월말까지 학교발전기금이 한푼도 접수되지 않은 초등학교 가운데 일부는 이번 운동회 한번으로 지난 6개월간 대구지역 초등학교들의 평균 기금 조성액인 1천500만원 안팎의 기금을 모으는 '저력'을 발휘했다. 전체 24학급인 ㅅ초교는 운동회 때 무려 2천600만원의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해 학급당 100만원 이상 모았다.
학교발전기금은 갖가지 명목의 기부금 모금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 행정실로 접수창구를 일원화한 것으로 기부액이나 학생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 원칙. 그러나 운동회에서 공공연히 접수하다 보니 학부모들에게는 '내기에 부담스럽고 안 내자니 걱정스러운'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모금과정 뿐만 아니라 사용도 제각각. ㅂ초교는 이번 운동회에서 1천여만원을 모금해 운동회에 필요한 부식, 기념품 등을 사는데 200만원을 써버리고 나머지 기금의 사용을 학교운영위원회에 넘겼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모두 보고 있는 운동장에서 기금을 걷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며 "모금과 사용과정이 투명하고 원칙적이어야 내는 학부모들의 마음도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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