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소박한 진리에서 생산된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 전국에 메아리칠때 논리는 소박하였다. 1천300만원의 국채를 당시 인구 1천300만명이 1원씩 부담하면 청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국채를 청산해야 대한제국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국민도 반식민지(종속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생각이 사회정의를 일으켜 독립운동의 추진력이 되었다.몇년전에 경북대학교의 김영호교수가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는 모임을 갖는다고 하기에 필자는 가볍게 들었다.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지방별로 특징있는 사업을 추진하는 유행추세와 다름없이 대구의 지방사업 정도일 것이라고 가볍게 들어넘겼다. 흔히 있는 독립운동 기념학술대회처럼,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얼마나 되살릴 것인가를 의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근자의 소식은 그것이 아니다. 근 100년전 그때의 정신을 현대사에 접목시켜 21세기 새로운 세계운동으로 도약 발전시키고 있다. 그것이 1999년 10월 6일부터 8일까지 대구라운드 제1차 세계대회로 나타났다. 정말로 축하한다.
경제학의 문외한인 필자는 근래 한국 형편에 둔감해서 말을 잃을 때가 많았다. 특히 OECD나 WTO에 가입하는 가 하면 IMF사태를 맞아서 그 현대판 제국주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를 알 수 없어 다만 인류역사가 잘못되어 간다고 소리치는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레이시아 처럼 IMF로 가지 않고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방안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멕시코처럼 IMF로 가야했던 이유를 통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진정한 세계화였던가? 누구나 공식석상에서 '무한경쟁의 시대''국제경쟁에서 살아남자면'이라는 무서운 말을 서슴없이 토해내는 비인간적 현세태를 보면서 19세기 후반 이래 20세기를 휩쓸던 사회진화론의 엄습을 체감하면서 공포감에 젖기도 했다. 우리가 이런데 아프리카나 옛 유고슬라비아의 형제들은 어떨까 하고 흥분한 적도 있었다.
이럴때 세계외채 해결과 투기자본의 규제 등을 통해 세계 경제정의의 구현을 위한 시민운동으로서 대구라운드가 출범했다는 것은 여간 뜻있는 일이 아니다. 비정부 시민운동이므로 가시적 효과가 당장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민주화운동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시민운동이 확산되면 강대국 제국주의자들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변화를 국채보상운동에 접목시켜 일으킨 지혜에 대하여 박수를 보낸다.
세계 경제질서로서 자유무역이 좋기는 하지만 사람은 국경 안에 묶어놓고 물자는 국경과 관계없이 오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강대국들은 후진국이 어렵게 산업을 일으켜 기업을 키워놓으면 그것을 마구 흔들어 비틀거리면 흡수하고 만다. 그리하여 후진국은 GDP는 올라가도 GNP는 올라가지 못하고 항상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 이러한 강대국 중심질서를 탈피하지 않고는 사회정의나 인류평화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미국인이 르완다와 보스니아의 국민을 겸하고 르완다인이 독일과 미국인을 겸하는 방식으로 세계인의 다국적 질서를 수립하는 방도를 생각하자고 이야기해 왔다. 그래야 사회정의의 실현도, 환경오염의 극복에도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도에 의하면 대구에 모인 세계 석학들도 좋은 방책을 많이 제시했다고 들었다. 유엔의 비정부기구 담당자 헤미시 젠킨스가 "국제금융체제를 민주화하여 민중지향적인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의 개편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런 노력이 21세기에는 기념물로 남도록 대구라운드의 성공을 기원한다. 대구라운드 만세!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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