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주영 세상읽기-문화행사, 그리고 축제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의 한가지는, 지방행정기관이나 해당 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나 축제행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뽑힌 단체장들도 저마다 열성적인 문화의식을 갖고 의욕적인 문화행정을 편 단체장으로 평가되기를 바라고 있다. 주민들 역시 차단되어 있었던 문화적 욕구를 기량껏 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참여를 주저하거나 인색하지 않다.

길바닥에 깔려 있는 하찮은 돌멩이 한 개까지도 역사적 의미가 배어있어 관광상품이 아닌 것이 없는 유럽 여러나라들의 가위 흉내낼 수 없는 문화적 개화도 일찍부터 지방자치제를 실시했으므로 가능했던 것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고을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있는 축제와 문화제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오래전부터 지방자치제를 실시할 수 있었던 것에서 근본적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아메리카 쪽보다 유럽을 겨냥하고 떠나는 관광객들이 많은 까닭도 그들 나라에 함축되어 있는 역사와 문화적 향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문화란 말이 범람한 홍수처럼 넘쳐흐르게 되었다. 심지어 화장실문화란 말도 있고, 쓰레기문화란 말도 스스럼 없이 쓰이게 되었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관통하는 새로운 도로가 완공되었던 날, 그 소식을 방송하는 텔레비전 뉴스에 그곳의 지방자치단체장이 출연하였다. 그의 첫 멘트는 그 도로가 개설됨으로써 두 지방 사이의 관광객들의 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란 것이었다. 그의 발언에서 우리의 문화적 인식이 언제부턴가 획기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을 역력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얼마전까지만 했어도 그의 발언은 언필칭 양쪽 고을 사이의 산업생산활동이나 물류교환의 활성화를 언급했을 법하다. 자칫 사치로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화나 관광이란 행태가 사치나 소비일변도가 아닌 어엿한 필수생활행태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조짐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에 우리의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무작정 차려입고 비워준 거리를 행진하거나 특산품을 전시하고 맛보고 먹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오래된 절간 기둥에 페인트 칠하는 꼴 되기 십상이다. 어설프게 혹은 열의만 가지고 무모하게 접근했다간 문화 일반이 가지는 유구한 존엄성과 결연한 정체성과 그리고 독특한 전통성을 가차없이 망가뜨리고, 참여한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과 결속력 조차 한낱 물거품으로 만드는 불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란 말이 있듯이 다지고 주저하면서 시비분간을 삼엄하게 따져서 알토란 같은 예산만 낭비했다는 빈축을 사고 폐해만 부각시키는 역기능을 경계해야 한다.

두번째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너도나도 뛰어든 개발사업이다. 요사이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파헤쳐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개발 그 자체의 당위성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메우다 손을 떼버린 택지, 짓다가 방치한 대형건물, 깎아내고 뭉개뜨리다만 벌건 산기슭, 한길가에 난데없이 쌓아서 방치한 황토더미와 흩어진 쓰레기들은 그 개발계획이 무모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쪼들리는 살림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지방세의 세수를 위해서, 혹은 자치단체별로 빌려다 쓴 채무를 갚기 위해서, 보다 값어치 있는 주민들의 생활보장을 위해서,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당선될 수 있는 기력을 보강하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전국에서 소득이 가장 으뜸가는 고을로 만들기 위해서, 까닭이야 많겠지만, 정말 이러다가 사람이 발붙이고 살 수 있는 한 평의 땅인들 온전하게 남을 것인가 하는 역설적인 낭패감에 빠져들 때가 많다.

김주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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