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5세된 ㅅ할머니. 예전에 교수까지 역임, 어느 정도 재산과 학식을 갖춘 ㅅ할머니는 유일한 피붙이인 외동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돌볼 사람 한명 없이 동구 각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외롭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2년전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ㅅ할머니는 친척의 소개로 살림도 꾸리고 시중도 들어줄 아주머니 한사람을 받아들였으나 마음이 맞지 않아서 양로원에 들어가고싶다고 수시로 한국 노인의 전화 대구지부(053-426-0141)에 호소한다.
기·미혼 4자녀를 모두 독립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사는 ㅇ씨는 "아들·며느리, 딸과 사위가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 터라 아무하고도 함께 살지 않는다. 구태여 자식에게 기대어 살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달라진 부양 개념을 털어놓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에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2천535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 및 복지욕구를 조사한 결과 전체 노인들의 96.9%가 생존 자녀가 있으나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은 절반에 못미치는 49.0%에 그쳤다.
별거 노인들의 평균 자녀수는 4.6명. 많은 자녀를 키웠으나 살을 부대끼며, 미운정 고운정을 들이며 부모님을 따뜻하게 모실 '효도 자식'은 점차 찾아보기 어려워 전환기 노인들은 당혹해하고 있다.
"모든 것을 바쳐서 자식들을 뒷바라지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식들은 부모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발뺌을 한다"는게 오늘날 노인들의 푸념이자 비애이다.
나의 노후를 생각하여 내 앞으로 한몫 떼어놓을 생각은 엄두도 못낸채 노후에 마땅히 나를 돌봐주리라는 기대와 함께 길렀던 자식들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를 모실 능력도 시간도 공간도 없다며 발뺌을 한다.
적금 대신 자식 앞으로 효도 보험을 들었던 오늘날의 노인들은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음으로 (자식에게) 버림받는 '마처족'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은 생활보호대상자로 전락,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모씨는 수년전에 공기업에서 정년 퇴직을 하면서 퇴직금도 쏠쏠하게 받았다. 퇴직금을 받자 아들이 사업자금으로 달라고 해서 밀어주었다가 아들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알거지 신세가 됐다. 의도적이지는 않겠지만 자식 앞으로 모든 것을 밀어주었던 댓가가 찬바람나는 골방에서 노후를 비참하게 보내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자식을 키우고, 뒤를 대주면 당연히 내 노후를 책임질 줄 알았는데…"
자식들의 부양 부도, 효도 펑크 세태가 잇따르자 차츰 노인 세대들도 자식들에게 마구잡이식 효를 기대하기보다 내 앞길을 챙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고부 갈등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 친정 어머니의 며느리 험담을 한번도 들어주지 않고 말을 막기에 급급했던 한 중년 여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정말 불효했다"는 후회와 함께 그렇게 울었다.
"올케에게 그런 얘기를 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머니가 느끼는 답답함 등을 발산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은 했어야했는데…"라고 전한 그 여성은 이 시대의 효의 개념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효도는 원래 대단히 아름다운 가치이며 행동이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효도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상명여대 김경일교수는 우유가 신선할 때는 몸에 유익하지만 오래 되어 상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처럼 효의 개념도 시대에 딸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무조건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힘든 시대가 됐고, 가족내에서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가정에서 일차적으로 부모 부양과 효의 실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그 역기능도 적지않다"는 영남대 김한곤교수는 앞으로 사회적인 효를 실천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즉 개인적으로 효를 실천하는 가정의 기능들이 붕괴되는 자리를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지역사회와 국가에서 제도와 설비를 정비하여 사회적인 개념의 효를 개발해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상인복지관(관장 백남억)과 월곡초등학교는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현대 정보화사회에 맞는 사회적인 효를 실천하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나홀로 할머니들을 월곡초등학교 5~6학년 자원봉사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가서 말벗이 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와 우리들은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자고 약속했다. 할머니가 6·25 얘기를 하면서 군대간 손자 생각에 우셨다"고 말하는 월곡초등학교 학생들을 지도하는 월곡초등학교 임성무 교사와 상인복지관 이지연 과장은 이 프로그램의 참여자가 처음 1백명에서 일년만에 1백50명으로 늘었고, 내년에는 가족단위의 참여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날로 위축돼가는 가정적 의미의 효도가 지역사회에서 되살아나는 현장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느낀다.
崔美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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