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군 한국전 양민학살 추가확인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노근리 학살사건' 1주일쯤 후인 지난 1950년 8월초 낙동강의 전략요충인 왜관교와 고령교 2개를폭파, 수백명의 한국 양민을 사망케 한 사건이 미군 자료와 미군 참전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AP 통신이 확인한 미군전사(戰史), 비밀해제된 미국방부 문서 등 기록과 미재향군인, 한국인 피란민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한국전 발발 6주 후인 50년 8월 3일 북한군 3개사단에 밀려 낙동강을 따라 후퇴하면서 1기갑사단장 호바트 개이 소장과 장교들이 북한군을 낙동강 이북에서 저지할 목적으로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왜관교및 경북 고령군의 고령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군들은 다리를 폭파했으며 이 과정에서 어린이와 여성 등 피란민다수가 숨지거나 익사했다는 것이다.

참전 미군병사들은 당시 북한군들이 한국인 피란민을 가장해 미군을 공격하는사례가 적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고 회고했으며, 교량폭파로 인한 피살자수는 왜관교의 경우 수백명, 고령교의 경우 수십-수백명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제 1기갑사단장으로 부임한 지 불과 며칠 밖에 안된 개이 장군은 민간인으로 위장한 북한군 게릴라들의 격퇴 방안을 고심하던중 3일 저녁 부하들로부터 15마일 서쪽에 북한군이 모여있다고 보고받고 미리 폭약을 설치한 왜관교의 폭파를 지시했던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미군은 경고사격을 통해 한국인 피난민들에게 되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나 피란민 행렬은 계속 왜관교를 통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바람에 희생자가 적지않았다고 참전 용사들은 전했다.

제14전투공병대대 하사관 출신의 캐롤 킨즈먼은 고령교 폭파와 관련, "미군들이 밀려드는 피란민 머리 위로 총격을 가해 다리가 폭파될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려 했으나 피란 물결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됐다"면서 "그런 와중에 당일 오전 7시1분 상부에서 폭파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덕승교 폭파로 인한 희생자 발생에 관한 보도는 지금까지 AP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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