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당시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李光耀)는 싱가포르 관광중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미국 청년에게 국내법에 따라 태형 5대의 체벌을 가했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이 '야만적인' 형벌에 대해 항의했지만 리콴유는 "아무리 미국인일지라도 아시아적 가치가 있는 만큼 이를 어길 때는 나름대로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당당히 맞서 화제가 됐었다. 그는 같은 해 미국의 외교 전문지인 포린어페어즈 3·4월호 인터뷰기사를 통해 "아시아의 발전을 위해서는 가부장제나 종신고용 등 아시아적 가치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아태재단이사장이었던 김대중대통령은 같은 잡지 11·12월호에서 "인간에게는 자유·인권·정의 등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면서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통박했었던 것. 이런 저간의 사정때문에 22일의 김대통령과 리전총리의 청와대 독대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리콴유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운영의 기본 철학으로 하는 김대통령간의 상반된 주장이야 말로 귀담아 들을 만한 대목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두 사람이 그동안의 쟁점을 꺼내 논전을 벌이기보다 리전총리의 통치 경험과 국제문제에 대한 식견을 김대통령이 시종 경청할 따름이어서 세기말의 명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단지 리콴유 전총리는 김종필총리와의 면담에서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라 말해 여전히 스스로가 개발독재론의 옹호자임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DJ와 리콴유 두사람중 누구의 주장이 더 옳은것인지 아직은 결판이 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주주의 신봉자를 자처하는 DJ의 주변에는 부패 세력들이 눈에 띄는데 비해 리콴유의 주변은 훨씬 깨끗한 듯이 보이는게 우리를 헷갈리게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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