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천단지 문제는 '속임수의 역사(歷史)'라고 할 정도로 오욕으로 점철됐다. 역대 정권들은 국가공단 조성이 본격 제기된 지난 95년 이후 위천문제를 철저하게 정략적인 관점에서 이용해왔다. 냉철한 경제논리가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즉흥적인 요법으로 일관해온 것.
대통령이나 정부 관계자들이 대구에 오면 '얼마후 지정'이라고 했다가 부산.경남에서는 '수질개선 먼저'라고 하는 등 엇갈린 견해를 피력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정부의 갈팡질팡 대책은 대구-부산.경남 주민 사이에 갈등의 골을 깊게하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을 낳게 하는 근본원인이 됐다. 또 지역주민들이 목소리만 높이면 정부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김영삼정부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 정부들어서도 '말바꾸기'의 역사는 계속됐다. 97년 11월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대구의 대선후보 초청 TV토론회에서 "위천공단 지정문제는 집권후 6개월이내로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이 처음. 이후 김대통령은 지난해 3월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위천국가산업단지 조기지정 의지를 밝혔고, 지난해 4월 대구방문시에는 "4개월내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올 1월 대구에서 "금년 상반기중에 해결하겠다"고 말했고 올해초 김원길 당시 국민회의 정책위의장, 한화갑 원내총무 등 정권실세들도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약속은 모두 공(空)수표가 됐다.
정부가 위천공단 조성의 전제조건으로 지난 21일 내놓은 '낙동강 물관리종합대책'도 부산.경남의 거센 반발로 공청회조차 열지 못해 이래저래 위천공단 문제는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사실 이같은 속임수에 가장 크게 걸려든 것은 대구시였다. 대구시는 지난 96년 정부, 부산시가 "3공단, 염색공단 등 8개공단 308만평을 도심에서 이전하면 위천국가공단 지정을 해주겠다"고 요청하자 이를 덜컹 받아들였다. "위천공단 확정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실무진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대구시는 이 약속만 믿고 97년초 건교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2016년까지 공단부지 308만평을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하겠다고 고시했다. 결국 공단부지도 잃어버리고 위천공단 지정마저 받지 못했다. 대구시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朴炳宣.金辰洙.李宰協기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