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체제로 경제난이 휘몰아치던 지난해 봄, 약 3년간의 일본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었다. 대구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 번화가로 들어왔다. 어둠이 끼기 시작하는 초저녁이었으나 네온이 휘황하던 중앙로 상가는 불안하고 황량한 모습이었다. 휴일이 아닌데도 대다수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어둠속에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 모습이었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커다란 짐 가방을 힐끗보더니 "오랜만에 고향에 오시는 모양인데 손님도 신토불이(身土不二)해야 될겁니다"라며 직장인들이 실직과 해고의 공포속에 몸을 땅과 하나가 될 정도로 납작 엎드려 어수선한 세월을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택시기사는 그 당시만해도 생소했던 '워크아웃', '모라토리엄'에서 시작해 '모럴해저드', '빅딜'이라는 말들을 줄줄 뇌며 경제정책에 대해 푸념을 늘어놨다. 당시에는 사회 전체의 관심이 경제에 쏠려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제3의 도시 대구가 전국적으로 봐서 시세면에서 인천에 뒤처져 있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승객이 없음을 시 당국에 대한 불만으로 토로하고 있었다. 문화와 역사적으로 보면 대구를 그렇게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해줬으나 모두가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실감할 수 있었던 귀국길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많은 지역 기업들이 구조조정이라는 회오리 속에 빠져 있을 때 대구에 '퓰리처상 사진대전'이라는 큰 행사가 열렸다.
'죽음으로 남긴 20세기의 증언-퓰리처상 사진대전 20세기 고별전'이라는 명칭을 가진 이 전시회는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20세기를 살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백마디의 말보다도 강한 사진 한 컷의 힘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적인 행태, 역사를 바꾼 정치적 사건…. 그러나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바로 20세기를 살아오면서 상처입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 사진대전은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 될 수 있었다. 서울서 또 다시 고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이 전시회가 성사되기까지의 과정 역시 사진 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고 한다. 퓰리처재단의 협조를 얻기는 했으나 수상자들이 세계에 흩어져 있는 데다 각각 저작권 협약을 맺어야 했기 때문에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매일신문사와 연합뉴스가 공동주최한 대구 이동전의 경우를 보면 이 지역의 문화적인 저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기회였다. 이 행사에는 연 3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줄지어 기다린 후 관람하는 등 대구에서 열린 전시사상 최대의 숫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문화에 있어서 대구는 이미 그 수준과 '인프라'가 충분해 5대 도시 중에서 가장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사진기술이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대구는 '사진의 수도(首都)'로 불리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사진문화를 이끌어온 사진작가협회의 회원수로 봐서도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사진을 학문으로 연구하는 각 대학 사진영상학과의 숫자도 서울 경기지역보다 많아 전국에서 최대의 지역으로 젊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 배출되고 있다.
이러한 바탕속에 앞으로 대구에서도 국제적인 사진축제를 개최하기 위한 움직임이 조용히 태동하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에 이어 '부산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보면서 대구시 전역을 사진과 관련된 행사장으로 하고 세계적인 사진가들, 해외 사진관련 업체들도 참가하게 될 '국제 사진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연중 열리게 된다면 새 천년을 맞은 대구 시민들로 하여금 문화도시로의 회귀와 새로운 르네상스에 불을 지피기 위해 세계화된 시민이란 자신감을 곧추 세우는데 일조하리라고 본다.
그때쯤 경제불황의 긴 터널도 빠져나와 살기가 좀더 나아진다면 귀국길에 만났던 그 택시기사도 경제에 대한 푸념 대신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 한대 정도 차에 싣고 다닐지 모른다. 그래서 교외로 나갔을 때 길가에 핀 들꽃이나 철새라도 찍어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문화적 소양이 몸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체험들이 시민 전체로 확산돼 내부 역량이 축적된다면 대구도 문화도시의 명예만은 회복하리라 믿는다.
朴淳國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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