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60년대 경북 유도를 전국 최강으로 이끌었던 대구시유도회 이석도(71.대구시 중구 남산동) 고문.
그는 국내 유도계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원로 유도왕이다. 88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경근(전 쌍용코치)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유도선수로서 수많은 일화를 남겼고 아들보다 이름을 더 날렸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26살의 늦은 나이(54년)에 유도계에 입문했다. 그의 데뷔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과자공장에서 일하던 이석도의 떡메 치던 모습을 당시 경북경찰청 유도부 박시기 사범이 보고 단번에 경찰청 유도선수로 만들었다. 떡메를 너무나 가볍게 내리치는 그의 엄청난 힘 때문이었다.
타고난 장사였던 이석도는 자신의 힘에 유도 기술을 접목, 이때부터 10여년간 한국 유도를 호령하며 경북 유도를 천하무적으로 이끌었다.
이석도는 전국일반단체대항 유도대회에서 16연패(48~63년)를 달성한 경북경찰청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개인전에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경무대친전대회(이승만대통령이 직접 대회를 마련, 관전했다)에서 8연패를 달성하는 등 전국대회를 석권했다.
유도가 시범경기로 처음 채택된 제3회 아시안게임(일본 도쿄)에서는 금메달격인 우수상을 받아 국제 무대에도 명함을 내밀었다.
특출한 유도 실력 덕분에 이석도는 이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이대통령은 진해 별장에 올때면 언제나 이석도를 불렀고, 마침내는 특별 경호원으로 채용해 주위에 머물게 했다.
이석도는 선수 생활 후 사업가로 변신해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석재 공장을 차려 번 돈으로 땅을 사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한 재력가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이석도는 인생의 밑천으로 삼았던 유도를 자식 5형제들에게 물려 줘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듣고 있다. 형제들은 모두 유도를 잘 했지만 네째 아들(경근)이 세계를 제패, 집안의 위업을 달성했고 둘째 형근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金敎盛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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