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어느날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한 정 대리는 평소처럼 컴퓨터를 켜고 e-메일(전자우편)을 확인했다. 발신자가 총무부로 돼 있는 편지에 눈길이 갔다. 불안한 생각이 언뜻 스쳤다. 지난달 치른 '정보접근 등급심사'에서 입사 동기들보다 다소 쳐진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e-메일에는 등급 심사 탈락 통보와 함께 지방 전보 명령이 들어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정보접근 등급심사 탈락이라…' 정 대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보접근 등급은 사회적 신분을 결정짓는 잣대였다. 심사 탈락은 곧 신분 상승의 꿈이 좌절됐다는 뜻이다. A~E까지 5개 정보접근 등급 중 정 대리는 C등급에 속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C등급을 획득, 신분 상승의 탄탄대로가 열리는 줄만 알았다.
2015년 정부는 '국가 정보접근 등급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차세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무분별한 사이비 정보의 난립, 해커들의 난동, 정보 공유를 주장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운동의 소수 극렬주의자들의 사이버 테러 등. 위기감을 느낀 각국 지도자들은 2014년 중국에서 '베이징 라운드'를 열었다. 결과물은 놀라운 것이었다. 정보 질서 확립을 위해 등급제를 도입하고 각 등급별로 정보에 대한 접근에 제한을 둔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정보 신분차별이 시작된 것이다.
정 대리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내년에 한번 더 심사 기회가 주어지지만 1차 탈락자가 통과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접근의 제한은 사회적으로 '한정 치산자'가 된다는 뜻이다.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통제하는 정보기술사회의 몰인간성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30~40년전 미래학자들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자. 지난 7월 UNDP(유엔개발계획)는 연례 인간개발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내용은 기술 진보와 경제의 세계화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면이 있는 반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는 것. 보고서는 "기술 진보는 양날의 검"이라며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혜택에서 배제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컴퓨터 1대 가격이 8년치 연봉과 맞먹지만 미국에선 한달치 봉급이면 살 수 있다. 또 영어권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10%에 불과한데도 인터넷 전체 웹사이트의 80%는 영어로 돼 있어 비영어권의 정보 취득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바야흐로 정보 혁명의 시대다. 지난 69년 10월 25일 미국 국방성에 의해 다분히 전략적 목적으로 인터넷(당시는 알파넷(ARPA net)으로 불렸다)이 탄생한 뒤 30년이 흘렀다. 불과 몇해 전 '정보의 바다', '정보의 보고'등 아련한 동경의 대상으로 불리던 인터넷이 어느새 삶의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의 성장 속도는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다.
웹 마스터, 웹 어드민, 커뮤니티 디자이너, 웹 애널리스트, 웹 자키, 스트리밍 엔지니어, 사이버 브랜디스트, 플랫폼 디렉터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아직은 답을 모른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없다. 그러나 내년 이맘 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지 장담할 수 없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21세기 유망 사이버 직종 중 일부다. 웹 마스터는 인터넷 홈페이지 기획, 내용물 제작, 서버 구축 및 관리 등 전반을 책임지는 사람을 말한다. 웹 마스터 내에도 70여개 직종으로 세분된다. 인터넷이 주도하는 '디지털 혁명'이 만들어낸 현대사회의 단편이다.
컴퓨터 산업부문 세계통계를 제공하는 미국 얼머낵(Almanac)사는 최근 흥미로운 통계를 발표했다. 전세계 인터넷 이용인구 2억5천900만명 중 미국 이용자가 1억1천만명으로 43%를 차지했다는 것. 국내 이용자수는 568만8천명으로 세계 10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인터넷 이용 상위 15개국이 전체 이용자수의 82%를 차지한다는 점. 어느 누구도 인터넷 접근을 통제하지 않지만 정보 접근의 국가간 빈부 격차는 자연스레 벌어지고 있다. 스스로 정보이용의 빈자인지 부자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정보화는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야 할 몫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2005년까지 지역 정보화를 이루기 위한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행정, 산업, 생활, 도시 정보화를 통해 각종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지식기반산업을 조성하며 지역민 삶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대구시, 경북도 모두 생활 전반에 걸친 정보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내세우고 있다.
사업계획은 시스템 구축 일색이다. 생활기본정보시스템, 여성복지정보시스템, 자원봉사관리시스템, 아동보육정보시스템, 문화재정보시스템, 지역보건의료정보시스템, 시민평생건강관리시스템, 원격진료시스템, 긴급구조정보시스템, 재난안전관리시스템, 교통정보시스템 등등.
지역민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자는 것인지 행정 편의를 도모하자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렇듯 행정, 산업, 생활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진행됐을 때 일반인들의 정보 접근 문제다.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공유하자고 수천억을 투자해 만들었는데 이용자들의 마인드가 미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모든 정보를 공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수직적 계층은 사라지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하고 나눠가질 수 있다. 과거 고대 그리스에서 이룩했던 직접 민주주의가 인터넷을 통해 도래할 수 있다고 점치는 학자들도 있다. 사이버국회, 사이버정당이 등장했고 미국 한 상원의원은 온라인으로 최고액의 정치헌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세계의 흐름을 간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 최대의 걸작으로 불리는 인터넷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무한정의 정보가 쏟아지지만 결국 그것을 소화해 내는 것은 이용자 자신이다. 미래 정보사회를 맞이하는 대응전략의 첫 걸음은 철저한 자기변화다. 변화를 주도하진 못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나 지자체가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 주진 못한다. 심하게 말하면 국가나 지자체도 정보화의 대세에 떠밀려가고 있는 셈이다.
각 지자체가 '지역 정보화'를 통해 모든 지역민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될지는 모르지만 인터넷의 정보를 받아들여 자기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진 못한다. 정 대리가 사는 2030년처럼 인위적으로 정보 신분제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도태는 불가피하다. X-세대가 저물고 N-세대가 떠오르는 마당이다. 인터넷의 바다로 뛰어들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