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숙자 쉼터서 주경야독 16년만에 펼친 향학 꿈

◈늦깎이 수험생 노성일씨의 새삶

온나라가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헤매고 있던 지난해 9월, 대구시 중구 종로2가 '가톨릭 노숙자 쉼터'로 들어왔던 노성일(29)씨는 지난 17일 평생 잊지 못할 귀한 선물을 받았다. 중학교 1년을 채 못마치고 접어야 했던 배움의 꿈. 이 날 받은 선물은 그 꿈을 이뤄주게 될 '수학능력시험 성적표'였다.

서울에 갈 수 있는 차비를 준다기에 들어왔던 노숙자 쉼터. 이 곳에서 노씨는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공사장 잡역부에 불과했던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

16년간이나 놓아뒀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지 7개월만인 지난 4월 노씨는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3개월후인 지난 7월 고교과정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수학시험은 만점. 다른 과목의 평균점수도 모두 90점을 넘었다. 노씨의 공부를 도와주던 야학 '새얼학교' 선생님들도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숙자 쉼터에 머물며 낮에는 일을 하러 다니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노숙자 주제에 무슨 책이냐'며 비아냥거리는 동료 노숙자들. 중학교 책을 들고다니는 것이 부끄러워 화장실과 길거리 가로등 아래에서 책을 봤다.

책을 사기 위해 일을 해서 번 돈은 모두 모아둬야했다. 그래서 노씨는 지난 6개월동안 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 한끼만 먹고 하루를 버텨왔다.

불우하게 살아온 자신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노씨는 열심히 학비를 모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꿈을 갖고 있다.

"분수를 모른다고 손가락질하던 노숙자 쉼터 동료들도 이제 저를 보면 '우리도 할 수 있구나'하는 얘기를 합니다. 요즘은 동료들도 더 열심히 사는것 같아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여느 학생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인 수능 269점. 하지만 '늦깎이 수험생' 노씨의 얼굴엔 부끄러운 표정이 없었다.

崔敬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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