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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학통 이은 6인의 학문

고금의 성현들에게는 늘 그 사상과 철학, 교훈을 뿌리내리고 더욱 심화시킨 제자.후학들이 있었다. 퇴계 이황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퇴계의 학문적 영향력은 문하(門下)에게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중 퇴계의 사상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학문의 영역을 개척한 학자들을 손꼽으라면 6명으로 범위가 좁혀진다. 소위 6철(六哲)로 불리는 이들 퇴계 제자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경북대 퇴계연구소(소장 송휘칠)가 펴낸 '퇴계문하 6철의 삶과 사상'(예문서원 펴냄)에는 월천 조목(趙穆.1524~1606)을 비롯 학봉 김성일(金誠一.1539~93), 간재 이덕홍(李德弘.1541~96), 서애 유성룡(柳成龍.1542~1607), 한강 정구(鄭逑.1543~1620), 지산 조호익(曺好益.1545~1611) 등 16, 17세기에 활동했던 퇴계 제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삶과 사상을 22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철학과 문학, 교육, 예론, 경세론 등 분야별로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퇴계학 연구의 권위자들인 이상순 윤사순 금장태 강주진씨 등의 논문이 담겨 있다.

6철중 조목은 공자와 안연의 관계에 비유될 정도로 퇴계의 수제자. 퇴계 사후 그의 저작을 발간하고, 그의 유업을 후인들에게 전수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주자학의 관점에서 유학의 원전과 주해들을 고증하고, 해석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 인물이다. 또 요즘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김성일과 유성룡은 관료로서의 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신의 사상을 정치에 구현하는데 노력하거나 현실사회의 개혁을 강조했던 인물로 특히 유성룡은 위로 퇴계의 학통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실학파를 연결하는 교량적 위치에 있었다.

한편 이덕홍은 철두철미하게 퇴계의 성리학 사상을 전승한 인물. 역법과 병략 등 여러 방면에 통달한 그는 성리학의 정치적 이상주의를 현실적인 정치적 상황에 적용시키는 진일보한 면모를 보였다. 20세 넘어서 퇴계 문하에 들어간 정구는 퇴계와 남명 조식의 학문적 사상을 동시에 전수받은 유일한 인물로 양 사상적 계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다. 예학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던 그는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 퇴계와 남명의 학맥을 전수했다.

반면 조호익은 예학과 경학에 몰두한 도학자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퇴계의 학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역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그의 예학사상에 대해 새로운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저자들은 한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적극적으로 발굴했다. 당시 사회적 역사적 상황과 관련 각 인물의 사상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힌 점도 눈에 띈다. 각 인물들의 삶과 사상의 한 단면을 조명하기보다 퇴계 문인들의 생애와 학문세계를 좀더 객관적이고 다각도로 살펴봄으로써 6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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