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기말에 서서…

21세기에로의 전환기에 선 한국인에게 20세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카(E.H.Carr)의 말대로 우리가 역사의 '연속성'을 수용한다면 20세기는 분명 19세기와 21세기를 잇는 역사의 징검다리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한민족은 군함.대포의 위력과 근대 국제법의 논리를 앞세운 일본과 서양 열강에 의해 개국과 통상을 강요당하였다. 그 후 한반도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고 군사 전략적 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국왕 고종의 '부국강병'에 대한 집념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점점 더 경제적으로 피폐하여 갔고 군대는 점차 외세의 영향하로 끌려들어 갔다. 조선에는 청국 군대와 일본 군대가 주둔하고 일본.청국.미국.러시아군이 차례로 조선군의 훈련을 담당하였다. 왕궁의 수비조차 외국 군대가 담당할 지경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일부 지식인 사이에는 민족의식이 싹트고 자주와 독립의 의지 또한 팽배하여 갔다. 그들은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기도 하였다.

20세기는 한국의 주권 상실과 함께 시작되었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마감하면서 나타난 국제 정치 현상은 여전히 열강 중심의 국제 질서 구축이었고, 이러한 틈 사이에 전게된 민족자결주의나 약소국의 독립운동은 이상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몸부림에 불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한국에 주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 후의 한반도는 미.소 양진영간의 냉전체제의 대결장이 되었다. 거기에는 처절한 이념적 갈등과 군사적 대결이 병존하였으며 결국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국토 분단은 한반도 뿐만이 아니었다. 독일과 베트남 그리고 예맨도 같은 운명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이들과 달리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1990년 동.서독의 통일은 20세기의 국제정치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독일 통일을 계기로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소연방도 해체되었다. 세계는 양국체제의 시대를 마감하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20세기말의 논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문명충돌에 관한 논쟁으로 바뀌었다. 국제분쟁 또는 전쟁의 원인을 이제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간의 충돌 또는 기독교 문명과 유교 문명과의 충돌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20세기 중 한국민에게 가장 괄목할만한 사실은 6.25 전쟁의 폐허 위에서 이룩한 경제적 고도성장과 오랜 권위주의적 통치 후의 민주화 실현일 것이다. 그러나 WTO 체제의 출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경제적 고도성장을 정치적으로 남용한 결과 외환위기를 겪게 되었으며 그 위기를 겪는 과정에서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한번 19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1세기는 정보화의 시대를 생명기술(Biotechnology)과 초정밀기술(Nanotechnology)의 시대로 예상된다. 이렇듯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냉엄한 국제 정치 현실에서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국제정치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한 역사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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