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시형칼럼-광적인 시대

스타들의 몸 놀림 하나에 10대 소녀는 넋을 잃는다. 몸을 비틀고, 괴성을 지르고, 가히 집단 히스테리 발작이다. 실신도 한다. 이 순간만은 완전히 여기에 빠져든다. 집이고 학교고 시험이고, 이들에겐 전혀 문제가 아니다. 아예 의식조차 못한다.

현실 판단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의학에선 미쳤다고 진단한다. 술.음악.현란한 조명.광란의 춤에 빠진 젊은이들도 광적인 상태다. 온종일 컴퓨터 게임에 빠진 사람도 현실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사이버 세계를 마치 현실인양 착각하는 것 역시 광적인 상태다.

도박.술.마약.경마.낚시.바둑…스피드광에 이르기까지 현대는 가히 광적인 시대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빗길 과속만이 아니다. 이대로 가면 기다리는 건 파멸 뿐인데 한번 빠져들면 영 자제가 안된다. 미쳐도 보통 미친게 아니다. 밤새워 하는 고스톱까지 우린 어디엔가 한군데 미쳐있다. 일에 미친 사람, 돈에 미친 사람, 섹스광까지…. 온통 제 정신이 아니다.

사이비 종교만이 아니다.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미친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도 주체사상 신봉자가 건재하다. 제법 식자연 하는 인사도 많다. 문제는 이들이 남의 말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인은 지고의 선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어떤 설득도 먹혀들리 없는 중증의 망상 환자들이다. 이런 부류가 최악의 광인이다. 이들은 신념이 강하고 설득력이 좋아서 주위의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골치는 최근 우리 주변에 날뛰고 있는 정치광들이다. 우선 이들은 내가 미쳤다는 병식(病識)이 없다. 그러니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할 이가 없다. 자기 치료는커녕 자기만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역시 망상적 신념이 강하다. 나 아니고는 안된다는 자기 중심적 과대 망상증에 빠져 있다. 이 점에서 이들은 구제불능이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상식이 있는 주위 측근들이 충고도 했으련만 그게 먹혀들리가 없다. 되레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길길이 날뛴다(미친 사람일수록 이 점에선 더하다).

우리의 불행이라면 이들을 진단할 정확한 도구가 개발이 안되어 있다는 점이다. 도핑 테스트처럼 흔적만 나와도 실격 판정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치 선진국에선 대단히 예민한 잣대가 있다. 거짓.부정.뇌물.당적을 옮기는 철새 등은 국민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우리 정치광들은 이런 것쯤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쳤지.

물론 그 중엔 억울한 케이스도 있을 것이다. 야비한 정치보복으로 억지 누명을 쓴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국민들은 옥석을 가릴 능력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잘 골라야 한다. 그의 경력이나 인품 등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광기 여부를 잘 진단해야 한다.

잘못 진단해 잘못 뽑으면 온 국민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또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 울화통이 터지게 만들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봄바람과 함께 선거바람이 분다. 경제도 기지개를 펴고 얼어붙은 마음이 풀리면 우린 자칫 평상심을 잃기 쉽다. 지겨운 생활, 기계처럼 돌아가는 권태로움에서 그만 자제력을 잃고 충동적으로 되기 쉬운 계절이다. 쉽게 달아 오르고, 쉽게 흥분하고 들뜨기를 잘하는게 우리 민족의 취약점이다.

일단 불이 붙으면 내일은 삼수갑산에 갈망정 이성을 잃고 아주 그 길로 잘 빠지는 광기가 있다. 평생을 후회할 일도 서슴지 않는다.

냉정해야 한다. 이 광기어린 시대를 슬기롭게 살려면 냉철한 이성과 균형잡힌 생활감각이 필요한 때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정신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