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내 한 표의 값어치

오는 13일은 화창한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뜻하여 어린이들이 까닭없이 즐거워 깡충깡충 뛰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마냥 즐거워하며 바라보는 그런 날. '낙양성에 가득한 복사꽃 배꽃 그 꽃잎 이리저리 휘날려 어느 집에 날아가나'옛시인의 노래처럼 거리의 꽃들도 화사하였으면 좋겠다.

이날 시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하는 한 40대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다정하여서 좋다. 조금은 긴장된 것 같은, 그러나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란히 걸어간다.

봄날처럼 맑은 선거풍경

그 부부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고. 나는 어젯밤 그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살짝 들었다.

남편:내일 우리가 찍는 두 표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 될까?

아내:밥 한끼 잘 내고 한 표 얻으려는 입후보자도 있다고 하니 2, 3만원 정도는 되겠네요.

남편:에끼 이 사람아. 그래 가지고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려 하나. 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만원 값어치는 된다고 생각하네.

아내:아니 그렇게나 많이요?

남편:생각해 보라고. 의정활동 열심히 하는 의원을 뽑아놓으면 우리가 내는 세금 헛되이 쓰지 않는지 잘 감시할 것 아니오. 뭉텅뭉텅 엉뚱한 곳으로 빠져 나가는 우리 돈 잘 챙겨주면 그게 다 우리에게 덕이 되어 돌아오지. 큰 놈 교육환경 좋아질거고 우리도 조금 안심하고 살도록 복지입법도 잘해줄거고. 그런 의원들이 4년동안 국회에 있다고 생각해봐. 그만한 값어치를 하고도 남지.

아내:맞아요. TV를 보니까 독일의 의원들은 도서관에서 살고 밤 늦도록 보좌관들과 법안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남편:제기랄, 밤낮없이 무슨 호텔 무슨 요정 찾아다니며 보스따라 계파정치 바쁘고, 어디 돈 생길 데 없나 경제인 눈치코치 살피며 만나고, 국회 열어놓으면 지휘부 지시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공전시키고 법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패들이 득실거렸으니….

지역감정 휩쓸려선 안돼

지역감정에 휘말리지 말자,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뽑아 정치개혁은 시민들이 이루자, 이런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고 두 사람은 말하고 있었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시끌벅적 해지면서 백일몽처럼 떠올려본 한 풍경이다.

이번 선거에는 나도 무관심하게 될 수 없게 되었다. 필자가 대표이사로 있는 주식회사 세기에서는 지난 달 전국의 국회의원 후보자 1천여명에게 안경 하나씩을 보냈다. 안경다리 오른 쪽에 '유권자를 바로 보십시오', 왼쪽에 '공명선거 2000'이라는 글을 써넣은 안경이었다.

'지역주의와 연고를 앞세우고 금권·관권이 난무하는 선거행태를 탈피하고 정책과 비전을 앞세우는 선거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하려면 정치개혁을 열렬히 바라는 유권자들의 뜻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뜻에서 보낸 것이었다. 친구들과 선거이야기를 하다가 "안경이란게 무엇이냐,흐릿하게 보이는 것을 분명하게 보이게 하는 것 아니냐, 이번 선거양태도 보아하니 구태가 그대로인데 후보자들이 유권자의 생각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 모양이다. 자네가 안경쟁이이니 바로 본다는 상징성을 살려 아이디어를 내어보아라"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인데 부끄럽게도 매스컴을 탄 모양이 되었다.

선거문화, 이제는 바꿀때

3월 30일자 매일신문 사설제목은 '싹쓸이는 부끄러운 일이다'였다. 이날 미스터 팔공씨는 수백억 재산을 가진 총선후보가 납세실적을 적으랬더니 '0원'이라고 한 것을 보고 '돌아버리겠다'고 했다. 이런 모양이니 선거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변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도도해지고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 시인이 있다. 이번에도 우리 국회의 모습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면 '잔인한 4월'을 우리는 만들게 된다. 전국에 있을 앞의 부부같은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전해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