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창가에서-5월의 신록이 부끄럽다

그해 겨울이 유난히 혹독하리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날짜마저 뇌리에 선명한 12월 3일,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패배감과 참담한 심정으로 국제통화기금이 우리의 국경을 넘어 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회한과 반성의 목소리도 잠시, 그해 겨울이 지나가자 우리는 빠른 속도로 평상심을 되찾기 시작했다.그로부터 세 번째 맞이하는 이 봄날, 한창 물이 오른 신록이 눈부시게 맑은 5월에 예전의 그 참담한 심정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차라리 3년전에 당한 치욕은 '자본주의에 미숙해서…' 라며 동정의 여지나 있지만 최근에 드러난 일련의 사건은 마치 우리의 치부를 저잣거리에 내놓은 것 같아 목덜미가 화끈거림을 금할 수가 없다.

##일련의 사건…목덜미 화끈거려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노회한 교수가 특기생 입학과 교수 채용을 미끼로 거액을 챙겼다는 사실이 이 시대의 현주소라면 국민을 대표해야 할 고위 외교관이 현지에서 도박장을 드나들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더구나 일국의 국방을 책임진 고관들이 장비 도입과정에서 미모의 로비스트와 연서(戀書)를 주고 받았다니 국방을 '전자오락게임'인양 여기는 가벼움에 헛헛한 마음을 달랠길이 없다. 기네스북에나 오를 법한 이런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잿빛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이 봄날, 구류백가(九流百家)가 춤추던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법가(法家)사상이 다시 떠오른다.

당시 왕조는 촌락단위의 자연적 사회질서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서역 변방에 위치한 진(秦)나라는 가장 먼저 이러한 촌락질서를 법(法)으로 관리하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대개혁을 단행한 인물이 바로 재상 상앙(商革央)이다. 자연스럽게 살던 국민들은 법이라는 일정한 '틀'에 맞추려니 여간 불편하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상앙은 단호했다.

##춘추시대 개혁가 상앙이 그리운 이유

한번은 태자가 법을 어겼다. 왕위를 이을 태자에게 직접 형벌을 가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예외를 만든다면 상앙이 창조한 법체계가 흔들릴 것은 뻔한 일. 그래서 태자를 보필하는 공자를 처벌하고 태자의 스승은 이마에 문신을 새기는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법 적용이 추상같자 이때부터 국민들은 법을 신뢰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머지않아 보복의 날이 다가왔다. 왕이 사망하고 태자가 즉위하니 그 신하들은 상앙이 모반을 꾀했다고 모함, 그를 체포하러 갔다. 이를 눈치 챈 상앙은 국경까지 도주하여 여관에 숨으려 했지만 허가증이 없어 여관에 머물 수가 없었다. '허가증 없이는 사람을 숙박시키지 말라'는 법은 바로 상앙이 만든 것인데 결국 자기가 만든 법에 옭매여 피신하지 못하고 생명을 단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법이 이 변방에까지 훌륭히 지켜지는 것을 보고 상앙은 내심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비록 본인은 희생됐지만 그의 단호한 통치이념이 훗날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반석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래서 상앙은 당시 덕치(德治)를 주장하는 유가(儒家)에 정면으로 맞서 법가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法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3C현상 여전

다시 그해 겨울, 뉴욕타임지는 경제 우등생인 한국경제의 몰락원인을 3C로 요약했다. 부패(Corruption)와 패거리주의(Cronyism) 그리고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자기만족(Complacency)이라고 정곡을 찔렀다. 이 세 요인의 공통점은 모두 법이 제대로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덕(德)은 법(法)을 앞선다. 그러나 법을 모르는 자에게 덕은 무용지물인가. 21세기 대변화의 시기에 극단적인 법가로 알려진 상앙에 대해 야릇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 오직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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