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십억 받아 경남종금서 세탁

고속철 로비스트 최만석(59.수배)씨가 경부고속철도 차량선정 로비 대가로 알스톰사에서 받은 수십억원이 경남종금을 통해 세탁된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고속철도 로비의혹 사건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최씨가 알스톰사의 차량공급업체 선정후인 94년 11월과 95년 5월 2차례에 걸쳐 로비대가로 미국계 BOA은행 홍콩지점을 거쳐 1천100여만달러를 사례금으로 받은 사실을 확인, 지난 5월 공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초기에 최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최씨가 자신을 알스톰사에 소개한 호기춘(51)씨에게 준 386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700여만달러의 용처를 규명하기 위한 계좌추적 작업에만 매달려 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95년 말부터 이듬해 1월 사이 거액의 뭉칫돈이 경남종금에서 반복 입.출금된 단서를 포착, 자금흐름을 역추적한 끝에 이 돈이 최씨 소유인 사실을 확인했다.

최씨가 받은 로비자금의 상당액이 국내로 반입되고 이 돈이 석연치 않은 세탁과정을 거친 사실이 밝혀진 이상 향후 수사의 초점은 세탁된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 지에 모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는 알스톰사가 일부 평가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독일의 GEC사를 제치고 차량공급업체로 선정된 배경에 로비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이런 가운데 최씨가 C 전의원 등 경부고속철도 차량공급업체 선정을 한 문민정부의 실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실도 드러나 건국이래 최대 국책사업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최씨가 국내로 반입한 로비자금이 경남종금을 통해 세탁된 사실만 확인됐을뿐 이 돈이 정.관계로 유입됐는 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간의 자금추적 과정에서 현역 한나라당 의원 등 10여명의 여.야 정치권인사에게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자금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최씨가 로비자금 세탁창구로 92년 대선당시 김영삼(金泳三) 후보 진영에 거액의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샀던 경남종금을 활용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94년 7월 투금사에서 종금사로 전환한 경남종금은 문민정부 시절 특혜를 받아 종금사 허가를 받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또 경남종금의 대주주인 김인태(金仁泰) 회장은 김 전대통령 가족 및 가신그룹 등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씨가 안전한 자금세탁 창구로 영남권에 기반을 둔 경남종금을 택했고, 세탁된 로비자금을 고속철도 차량 선정과정에서 힘을 써 준 정.관계인사들에게 뿌렸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최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게 확실시되는 데다 김 회장도 97년 대선직후 해외로 도피한 상태이기 때문에 로비자금의 정.관계 살포 부분에 대한 수사가 쉽게 진척될 지 여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 검찰은 최씨가 세탁한 돈의 용처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수사과정에서 파편을 맞는 정치권 인사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한편 검찰은 여야 영수회담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번 수사가 정치권을 타깃으로 한 것인 양 비쳐지면서 정치쟁점화할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곤혹스런 표정을 보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은 최씨가 국내로 반입한 자금을 경남종금을 통해 세탁한 사실만 확인된 상태"라며 "야당 등 정치권을 겨냥한 수사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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