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소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나오는 주인공이 영화관에서 느꼈던 기분을 웬만한 영화광이라면 한 번쯤 느꼈음직할 것이다. 온갖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주인공들은 멋진 사랑을 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해피엔딩에 이르며 관객들은 그에 황홀해 한다. 그러나 자의식이 강한 관객들은 영화가 끝난뒤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현실과 다른 영화에 찜찜해 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에 중독된 자신을 발견하곤 허탈해한다.
'꿈의 공장'(일리아 에렌부르크 지음, 김혜련 옮김, 눈빛 펴냄, 314쪽, 1만2천원)은 전 세계의 수많은 '할리우드 키드'들이 느꼈을 황홀함과 허탈함을 설명해주는 책이다. 1910~30년대 초기 할리우드 영화산업자들의 성장을 통해 영화산업의 이면을 파헤치면서 그들이 현실을 왜곡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통을 세운 과정을 자연스레 서술하고 있다.
1890년 이후 유럽의 생활고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많은 이민자들은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살면서 여가시간에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어 영화관으로 몰려들었다. 그 이민자들 중 영화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한 아돌프 주커와 윌리엄 폭스, 칼 램믈 등은 독립 영화사를 설립, 두각을 나타냈다. 워너 형제 역시 영화산업에 뛰어들었다. 수백개의 다른 영화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20년대말 이들은 제작겧穩?상영 체인을 모두 소유한 파라마운트, 로우, 워너 브러더즈, 20세기 폭스, 라디오 키이스 오펌의 '빅 파이브'와 제작,배급망을 가진 유니버설, 컬럼비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의 '리틀 쓰리'를 소유하게 된다. 이들은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잊어버릴수 있는 극적이고 '꿈'같은 이야기로 꾸준한 성공을 거둔다. 영화를 철저히 영리적 목적에서 접근했던 이들에게 비참한 현실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영화는 절대 금기시되었다. 이들은 독과점체제를 이뤄 유럽으로 진출하면서 강력한 영화산업체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서로 결탁하고 착취하고 통합했다. 유럽의 영화사들도 할리우드의 야심과 탐욕에 맞서 대안을 마련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야심과 탐욕을 드러낸다.
러시아 태생의 작가는 초기 할리우드 영화산업가들의 인간적 측면과 야심을 함께 다루면서 현실과 허구를 섞어 오늘날의 할리우드를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대중의 꿈을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현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의식을 갖고 쓴 글이며 전체에는 냉소적 시각이 담겨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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