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모 대학병원 한 직원은 '청탁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하루 2~3건꼴로 쏟아지는 청탁을 해결하느라 업무는 뒷전이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청탁이 들어오는 곳은 지방자치단체, 기업체에서부터 이른바 '힘있는 기관'까지 거의 망라돼 있다. 진료예약이나 병실을 구해달라는 청탁이 가장 흔하다. '대기시간없이 바로 의사에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입원실을 구해달라' 는 청탁은 다반사고, 심지어 '진료비를 깎아달라'는 청탁까지 쏟아진다.
너도나도 줄을 찾아 부탁이나 선처를 호소하는 '청탁(請託)문화'가 만연, 업무처리에 지장을 주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가로 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
△ 무차별로 쏟아지는 청탁
최악의 취업난 탓에 최근들어 가장 두드러진 것이 취직청탁. 얼마전 직원 수십명을 채용한 지역의 한 건설업체는 쏟아지는 취직청탁을 우려, 결국 공개채용을 포기했다. 대신 일부에만 추천장을 돌려 '조용히' 신입사원을 뽑았다. 다른 한 건설업체는 최근 하청공사를 특정기업에 넘겨달라는 압력성 청탁을 받고, 다른 업체가 하던 하청공사를 되받아 넘겨줬다.
항공사 일부 직원의 경우 지인, 각종 기관으로부터 하루 평균 5~10건의 비행기표 청탁을 받고 있다. 특히 항공권을 구하기 어려운 연말연시 및 명절엔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다. 이사 등으로 인한 전화 이전시 전화 한 통화로 간단하게 처리가 가능한데도 "좋은 전화번호를, 빨리 뽑아달라"는 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국통신 관계자는 털어놨다.
행정기관 및 경찰은 더욱 심각하다. 구·군청의 경우 청소년에게 술, 담배를 팔아 영업정지를 당한 노래방이나 음식점에 대해 '영업정지 기간을 줄여달라' '과징금으로 바꿔달라'는 청탁이 구청장이나 국·과장은 물론 직원들에게까지 쏟아진다.
대구시내 경찰서 한 간부는 "음주단속에서부터 형사 및 경제사범에 이르기까지 '도와달라' '잘 봐달라'는 읍소형 청탁이 하루 1, 2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특히 무면허·음주운전으로 단속에 걸렸는데 해결해 달라는 청탁은 부지기수. 교통사고담당 한 경찰관은 "그냥 넘어가자니 미안하고, 도와 줄 수도 없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동시에 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아 한쪽 부탁만 들어주기 힘들어 아예 원칙에 입각,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 청탁문화 근절 움직임 및 전문가 진단
대구경찰청은 10일 오전 '사건청탁 안하고 안받기' 결의대회를 갖고 청탁 근절 운동에 나섰다. 경찰은 이번 결의대회를 계기로 외부인은 물론 조직내 청탁근절 분위기를 조성하고, 청탁 때문에 사건처리가 왜곡됐을 경우 조사 경찰관은 물론 청탁경찰관도 문책키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 1년간 서울경찰청이 사건청탁 근절운동을 벌인 결과 경찰비리가 약 40% 감소하는 등 성과를 거둬 전국으로 확산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는 "특별대우를 받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및 강박관념 때문에 앞다퉈 '연줄'을 찾아 청탁에 나서는 실정"이라며 "청탁이 아예 통하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업무처리가 가능한 제도 마련과 더불어 시민들도 의식개혁을 통해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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