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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척화비-대원군 쇄국의지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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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학적으로 성주를 와우(臥牛)형의 지세라고 일컫는데 소머리(牛頭)에 해당되는 곳에 성주여중고가 자리해 있고 교정 앞 뜰에 외세침범을 경계한 척화비(斥和碑)가 서 있다.

화강암 석재에 높이 약 1m, 폭 약 45㎝, 두께 약 13㎝로 된 이 척화비는 1871년 4월에 서울과 전국의 주요 지역에세워졌던 것으로 처음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원군이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간뒤 외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척화비가 전국적으로 철거되거나 땅속에 묻혀 버리는 운명을 맞았으며 이 비도 버려져 있다가 후대에 발견되어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 보관되어 있다.

비석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니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주문(主文)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고,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는작은 글자가 있다.

이 글은 1866년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한 뜻을 나타낸 글귀이다.

척화비는 당쟁과 부조리로 나라가 병들어 가는 것을 대원군이 온 몸으로 막으려한 상징물이지만 밀려오는 서양문물을 외면한 결과로 일본에의해 나라마저 35년동안 강점당하는 우리 민족의 쓰라린 한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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