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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용한 가족'이 처음 나왔을 때 '코믹잔혹극'이란 장르구분은 국내관객에게 무척 낯설었다. 이후 '엽기'가 21세기 문화코드로 떠오르면서 국산영화계엔 빈곤한 내용을 감추기 위해 다양한 장르를 짬뽕시키는 발칙한 시도가 횡행했다. 장르의 춘추전국이랄까.

그러나 그간 국산영화에서 발조차 못 붙인 장르가 있으니 이른바 '패러디'다. 굳이 다 아는 얘기를 한 번 더 비튼 영화를 보는 건 관람료가 아깝단 생각에서였을까.

12일 개봉한 '재밌는 영화'는 우리나라 영화를 밑그림으로 삼은 최초의 본격 국산 패러디 영화란 점에서 일단 파괴력을 인정해주고 싶다.

'재밌는 영화'는 한국영화의 블록버스터시대를 연 '쉬리'를 뼈대로 세우고, '친구' '공동경비구역 JSA' '엽기적인 그녀' '주유소 습격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동감' '간첩 리철진' '접속''반칙왕' '넘버3' 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어온 28편의 하이라이트로 살을 입혔다.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저지하려는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 일당이 한국에 잠입해 한국의 특수경찰 KP와 정면대결을 벌인다는 게 기둥줄거리. 임원희, 김수로, 김정은, 서태화가 각각 '쉬리'의 한석규, 최민식, 김윤진, 송강호의 캐릭터를 따랐다.

천군파 전문킬러 하나코(박경림 분)는 성형수술을 통해 상미(김정은 분)로 모습을 바꿔 KP 요원 황보(임원희 분)에 접근하고, 천군파 두목 무라카미는 부하들과 함께 액체폭탄을 한국으로 밀반입한다. 그러나 상미는 황보와 싹튼 사랑 때문에 번민에 빠지고 한일 공동개최일은 다가오는데….

패러디 영화의 묘미는 원작보다 한 술 더 뜨는데 있다. 상미가 지하철에서 황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장면은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닮았다. 그러나 상미는 토사물을 토해내는데서 그치지 않고, '국물'만 뱉고 건더기는 삼켰다가 목이 막히자 그 국물을 마셔버리는 엽기를 보여준다.

"나 돌아갈래". 박하사탕의 장면이 연상되는 철로위, 적에게 쫓기다 막다른 길에 몰린 무라카미는 "나 돌아… 버리겠네"라고 울부짖는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40계단 살인사건의 무대, 황보는 바바리 코트를 근사하게 차려입고, 그 유명한 비지스의 '할리데이'까지 흘러나오지만, 피해자는 오뎅꼬치에 찔리고 순대에 목이 졸려 버둥거리다 비장하게(?) 쓰러진다.

패러디영화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원작의 유명세를 빌려 재탕한 영화는 스토리의 빈약함을 낳는다. 패러디할 장면을 잔뜩 정해놓고, 그 장면들에 맞춰서 스토리를 끼워넣는 식의. '재밌는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찌마와 리'의 임원희를 그리워할지도, 김정은을 계속 TV에서 보고싶단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국산패러디 영화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대하리라"고.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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