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클릭-대구 이천동-고미술품 거리엔 적막감만…

25일 오후 대구시 남구 이천동 고미술품 거리에는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상가를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상가 주인들은 한가롭게 신문을 뒤적이며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의 고미술품점은 모두 20곳 안팎. 도자기, 목기, 민속품, 고서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점들이 4차선 도로 양쪽(캠프 헨리 후문∼건들바위 네거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중 몇곳은 문을 닫아놓았고, 문을 연 상가들에서도 활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5,6년전만 해도 '주말 경매'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적지 않았고, 간간이 일본 관광객들의 단체 쇼핑도 눈에 띄곤 했다. 대호양행 박순호(62)대표는

"IMF전에는 힘들긴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그 이후에는 버티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IMF이후 몇곳의 상점이 문을 닫았고, 현재와 같은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80년대 초반 형성된 고미술품 거리가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한때 전국에 유통되던 토기의 80~90%를 공급하던 대구 고미술품 업계가 고사 직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사실 고미술품 업계는 90년대 들어서부터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 산재하는 청자·백자 등이 중국 연변을 통해 국내에 대거 유입되면서 고미술품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고, 매기도 거의 끊겼다. 컬렉터들이 투자 의욕을 잃은 탓이다.

아직도 고미술품 업계는 '북한특수'에 상당부분 의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현재 문을 닫고 있는 상점 주인들은 '대박'을 노리고 중국 연변에 가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90년대 중반까지 국내 고미술품 목록을 다시 작성해야 할 정도로 국보급의 청자·백자가 북한에서 쏟아져 나왔지만, 요즘은 그것마저뜸하다고 했다.

가짜가 수없이 나돌고 '억대'의 고가 작품이 쏟아져 나온 것도 서민들의 관심을 돌리게 한 요인이다. 또다른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활발했던80년대에는 업자들이 '뇌물용'으로 고가의 도자기를 구입, 고미술품 붐을 촉발시켰는데 그런 풍토가 없어지면서 붐도 함께 사라져버렸다"고 씁쓸해했다.

최근들어 안팎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미술품 상가들은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구·경북고미술협회(회장 서정칠)는 지난 6월 IMF이후 처음으로 전시회를 연데 이어 내년초부터 한달에 두차례씩 '고미술품 경매'를 열 계획이다.

서복교(48)대구·경북고미술협회 총무는 "고미술품 거리를 시민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명물로 다시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의 장담대로 고미술품 거리가 활기있는 곳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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