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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솥계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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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에서 연구실 세간들을 정리하였다. 노적가리처럼 수북이 쌓인 해묵은 책들과 함께 몇 점의 민속물을 들어냈다. 일곱평 남짓한 좁은 연구실이 한결 넓어졌지만 토닥거리며 살던 식구들이 집 나간 것처럼 허전하기 그지없다. 투박한 채 소품을 담아두었던 가마솥이 빠져나간 자리가 유난히 휑하다. 발조차 하나 쪼개진 그 익부리(조선솥)는 나의 청년기를 보냈던 운문댐의 수몰지역인 방음리에서 십 수년 전에 내 방으로 들여와 연구실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는 그 인근의 신원리, 소진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대의 조선솥 생산지였다. 그곳은 우리사회에 현대적인 철강용선 산업이 발달하기 이전 근 300여년 동안이나 수공업단지가 형성되어 대대로 솥을 만들어 온 부촌으로 동네이름도 '솥계골'이라 불려져 왔다. 가마솥은 지금이야 골동품 가치 이외에는 별 쓸모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네의 가장 귀한 살림도구가 아니었던가.

근대화에 떠밀려 조선솥이 사라지면서 솥계골 또한 그 옛날의 영화를 깡그리 잃어버렸다. 일손을 놓게되니 여느 농촌이나 다름없이 가난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철강산업의 뿌리를 태동한 정신력이 남달랐던지 마을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당시 마을 지도자 홍영기씨의 향도 아래 '살고파마을' 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삶터를 일궈내며 그 명줄을 이어갔다.

솥계골 방음리에는 특별한 삶을 살다간 초민들의 애환이 골골이 묻혀있지만 내 연구실의 익부리가 사라진 것처럼 이젠 솥계마을 그 어디에서도 옛날의 용선터는 물론 새마을 운동이 발원했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푸르른 운문호소에 잠기다 남은 방음리 길가에 개인이 열어놓은 '새마을공원' 하나가 나그네의 걸음을 설핏 쉬어가게 할 뿐.

빠른 변화 속에서도 사회적 공유가치를 발굴해 내려는 것이 인간사의 깨인 생각이고 보면 근세기 공장제수공업이 발아했던 솥계골에 유형이든 무형이든 흔적 하나 남기고 싶다.

김정식 육군3사관학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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