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계층, 집단, 지역간에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도 첨예한 문제이다. 지난 밤 열렸던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 세 대통령 후보의 TV토론은 새삼 이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노-권 세 후보의 경제분야 토론은 당면한 한국경제의 주요문제 해법에 대한 보수-개혁-진보 3색의 정치경제학 경연장 바로 그것이었다. 무엇보다 첨예한 대립을 보인 것은 재벌개혁과 시장개방 분야이었다.
노 후보는 IMF 위기의 원인을 재벌체제에서 찾고 집단소송제나 계열분리와 같은 재벌개혁을 강조하였다. 재벌개혁이 안되면 IMF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재벌을 옹호하는 이 후보가 집권하면 재벌체제가 강화되어 제2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 이 후보에 대한 노 후보의 가장 강력한 공격 요지였다. 이에 권 후보는 몇 술을 더 떠서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해체의 대상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러한 노-권의 연합전선에 대항하여 이 후보는 정경유착을 하는 나쁜 재벌과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재벌을 구분해야 하고, 이념적 차원의 재벌개혁이 아니라 기업경쟁력 강화 차원의 재벌 개혁을 해야 하며, 시장을 통한 재벌의 퇴출과 규율을 주장하였다.
재벌문제에 대한 이러한 입장차이는 각 후보의 경제정책 기조의 차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라 하겠다.
시장개방에 대해서는 이 후보와 노 후보가 세계화의 대세를 인정하고 개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는 정책방향을 제시한 반면, 권 후보는 개방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노동자와 농민을 죽이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노 후보는 기업의 해외매각에 반대하고 외국자본 도입을 억제하려는 권 후보에 대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술을 이전하는 효과를 가지는 해외매각과 외자도입에 찬성하였다. 이에 권 후보는 투기자본 유입을 억제하자는 것이지 투자자본 도입을 막자는 것은 아니라고 받아쳤다.
지방경제활성화를 위한 서울집중 경제력의 지방분산 문제에 대해서는 세 후보 모두 적극적인 편이었으나 내용과 강도에 다소간의 차이를 보였다.
노 후보는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여 자치권을 확대하고, 지방대학을 육성하여 대학을 지식기반센터로 만들며, 행정수도를 이전하겠다고 하였다. 이 후보는 중앙부처의 지방이전, 권역별 초일류 대학육성, 지역별 전략적 특성화, 지방분권법 제정 등을 제시하였다. 권 후보는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을 하고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겠다고 하였다.
세 후보가 한 목소리로 지방분권을 약속하고 있어서 지방민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방분권을 어느 정도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할지는 두고 볼일이다.
경제성장 전략에서도 세 후보는 서로 다른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후보는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투자로 인적자원을 양성하면 21세기에 고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노 후보는 이 후보의 성장전략을 협소하다고 비판한 뒤, 남북관계의 개선을 통해 신동북아 특수를 창출하고, 재벌개혁과 노사관계 개선을 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동북아 특수는 허구라고 비난하였다. 권 후보는 이-노 후보 모두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고 힐난하고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창하였다.
그런데 세 후보 모두 지방분권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가치분배의 차원 즉 공평성 실현의 차원에서만 제기하고있을 뿐, 가치창출의 차원 즉 효율성 실현의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서 지방분권을 통한 새로운 경제성장 패러다임의 실현이란 보다 근원적인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전국 각 지역 국민들의 삶의 질을 골고루 높이고 새로운 국가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발전모델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토론이었다. 김형기 경북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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