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

미국은 12일 북한이 핵개발 동결을 해제한다고 발표한데 대해 "북한의 핵개발을 원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여론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조치"라면서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지만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함께 필라델피아로가는 공군1호기 상에서 기자들에게 "이것은 국제사회의 합의에 정면으로 대드는 것"이라면서 "평화적인 해결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플라이셔 대변인은 또 "대통령이 밝혔듯이 우리는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의 대외관계가 핵무기 개발계획의 제거에 달려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 국무부는 이날 공식 발표를 통해 "북한이 동결했던 핵시설을 다시 가동키로 한 조치는 유감이며 북한이 비밀 핵무기 개발의 포기를 포함한 모든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이라면서 "우방, 동맹국들과 협의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북한은 13일 모든 핵시설에서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해달라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요청했다고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IAEA는 본부가 있는 빈에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이 지난 94년 제네바핵합의에 의해 동결됐던 핵시설들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했음을 통보하면서 이같이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발표한성명을 통해 북한에 핵발전소를 재가동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한편 핵계획 재개 결정을 밀고나갈 경우라도 IAEA의 현 감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엘바라데이 총장은 "북한 핵시설에 대해 현재 취해진 밀봉과 감시조치들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긴요하다"면서 "밀봉 기능이나 핵시설을 감시하는 카메라를 제거또는 방해하기 위해 어떠한 일방적인 조치도 취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영국의 BBC와 미국의 CNN방송, AP와 AFP통신사 등 주요 해외언론들이 일제히 연합뉴스의 보도를 인용해 북한이12일 전격적으로 핵동결 해제선언이 뉴스를 주요기사로 긴급타전했다.

영국의 BBC방송은 이날 오후 인터넷판 톱기사로 긴급뉴스(Breaking News) 형식을 빌려 북한의 선언을 보도했다. 이날 북한의 핵동결 해제선언은 북한의 라디오방송을 통해 나온 것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BBC는 덧붙였다.

CNN도 인터넷판 국제면 톱기사로 이 사실을 긴급보도하면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긴급 소집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LA타임스는 이날짜 인터넷판에서 서울발 AP통신을 전재, 북한의 핵개발 동결 해제 사실을 전하면서 북한은 연간 50만t의 중유 선적을 중단키로 한 지난 11월 미국주도의 결정에 따라 다른 선택이 없다고 말했으며 이 발표는 예멘으로 향하던 스커드 미사일을 선적한북 화물선이 아라비아해에서 나포된 뒤 나왔다고 전했다.

◈ 정치권 반응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미사일선적 북한선박 나포사태에 이은 북한의 핵동결 해제선언 등으로 종반전으로 치닫은 대선정국에 주요 변수,특히 부동층의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한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일단 보수층 결집을 유도할 수 있는 등 불리하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나 최근의 반미기류와 맞물릴 경우 자칫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개발 포기 등을 강력 촉구하는 동시에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또한 현 정권과 노무현 후보의 대북관을 공격하면서 이회창 후보가 문제를 해결할 최적임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나라당은 13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전략회의를 갖고 북한에 대해 '벼랑끝 전술', '위험천만한 도박'이란 식으로 비난한 뒤 핵개발 포기, 핵사찰 수용, 국제협정 준수 등을 촉구했다.

이 후보도 이날 울산유세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 주에 선출될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며 "한.미.일 공조체제를 강화,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아래 평화적으로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핵개발은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7천만 민족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북한의 자세전환을 촉구한 뒤 "우리당의 이 후보는 눈치만 보고 질질 끌려다니는 김대중.민주당 정권과는 차원이 다르며 진정한 의미의 대북 평화정책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손범규 부대변인도 "민주당과 국민통합 21간의 정책공조안에 나온 공약중 북한 핵 개발 의혹과 관련, 현금지원 중단을 '고려'하겠다고 했는 데 집권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고작 '한번 생각해보겠다'는 식인가"라고 힐난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가 대선 판세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전날 국민통합 21측과의 합의를 통해 대북 현금지원 중단 문제를 고려하겠다는 쪽으로 후퇴한 것도 이와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전까지만 해도 노무현 후보는 현금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미국이 북한에 강경대응으로 나설 경우 오히려 반미기류를 더욱 확산시킬 수있어 대선 판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있다는 시각도 있다. 우선적으론 북한에 대해 핵동결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데 당력을 쏟고 있다.

노 후보도 "북한의 핵시설 가동과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대한 세계의 우려가 큰 만큼 핵시설 가동과 건설의 재개 방침을 철회하고 신중히 대처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대변인은 "제네바 합의는 이행돼야 하며 정부는 미국등과 긴밀히 협의, 한반도 전쟁위험을 없애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 정부 대책

북한의 핵동결 해제 선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종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의 핵개발은 어떤 경우에도 반대하며 핵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12일 북한 외무성 담화 발표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가진 뒤 『북한이 제네바합의, 핵비확산 조약,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에 따른 모든 의무를 준수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면서 이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현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수단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원만하게 풀리지 않을 경우 한반도 정세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최악의 경우 지난 94년 핵 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의 해결을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남북간 직접 대화를 통해 핵동결 해제를 철회하고 핵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한.미.일 공조체제 가동 및 중국, 러시아 등을 통한 대북 우회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즉 북한에 대한 직접 설득과 한반도 주변 4강을 활용한 우회 설득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은 그간의 경과를 볼 때 성과를 얻기를 힘들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우선 북한에 대한 직접 설득의 경우 북한이 우리측의 설득으로 핵 개발을 포기하거나 유보한다면 무엇하러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짙은 벼랑끝 전술을 다시 구사하려고 마음먹었겠느냐는 점에서 효과가 의심되는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4강을 통한 우회설득이나 북한.미국간 중재론 역시 미국이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성공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점들을 의식한 듯 정부 관계자들은 정부대책과 관련해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아직은 북한이 행동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며 일단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아직 선언일 뿐이며 현단계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했던 94년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 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부재론」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되고 있기도 하다. 청와대가 매일 오전에 있는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13일에는 생략한 채일체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이같은 곤혹스러운 정부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